13일 오전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아파트 문 앞에 10여명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이들은 희귀한 전세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까지 달려왔다. 9개 팀이 줄지어 집 내부를 둘러본 뒤 5개 팀이 이 아파트를 계약하겠다고 했다. 결국 이 5팀은 부동산 중개업소로 내려와 제비뽑기로 아파트 계약자 한 팀을 뽑았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아파트 전세매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줄지어 매물을 확인하고, 급기야 제비뽑기를 통해 임차인을 정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 남모씨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오늘 오전 10시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며 “이런 경우는 우리도 진짜 처음 보는 일”이라고 전했다. 심지어 이 전세매물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현 세입자의 이사 날짜에 새로운 세입자가 무조건 맞춰줘야 한다는 조건도 달려 있었다고 한다.
남씨는 “집주인이 (집을 볼 수 있는) 시간대를 하나만 정해줬는데, 보겠다는 사람이 9팀이나 되다 보니 한 번에 가서 줄을 서서 보게 된 것”이라며 “집을 본 9팀 가운데 5팀이 계약하고 싶다고 해서 내려와서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 제비뽑기로 계약자를 고르기로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자리에서 바로 도장 찍고, 계약 완료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인터넷 포털 매물 현황에 따르면 이 단지에서 같은 평형으로 나온 전세 매물은 단 한 개였다.
한 인터넷 카페에도 이 아파트를 찾은 경험담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주차장에서부터 9팀이 줄을 서서 이동했다고 전했다. 복도식인 이 전셋집 앞에는 집을 보기 위해 찾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기이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글쓴이는 “순서대로 집에 들어갔다 나와 부동산에 가서 가위바위보를 통해 당첨된 분이 남아서 계약을 했다”며 “친오빠는 꽝이 나와 허무하게 돌아왔네요”라고 썼다.
서울 지역에 전세난이 가중되다보니 최근엔 집도 보지 않고 전세계약을 체결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A씨는 “지난 주말에 집주인이 집을 내놨고, 아직 집을 보러 온 사람이 한명도 없었음에도 계약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강보현 정우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