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BTS 트집’에 부는 ‘글로벌 역풍’…“위험한 민족주의”

입력 2020-10-13 14:56 수정 2020-10-13 15:22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한국전쟁 70주년 관련 발언을 왜곡·비난하며 집단 불매운동 조짐까지 보이는 중국 누리꾼들이 오히려 전 세계로부터 역풍을 맞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들이 중국의 이런 태도를 “위험한 민족주의”라고 비판한 가운데 트위터에서는 중국을 독일 나치에 빗댄 ‘차이나치(China+Nazi)’ 해시태그도 퍼지고 있다.

앞서 지난 7일 BTS 리더 RM(본명 김남준)은 밴플리트상 수상 후 소감에서 “올해 행사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의미가 남다르다”며 “우리는 양국(our two nations)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남녀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밴플리트상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제임스 밴 플리트 미 8군사령관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상으로 1995년부터 매년 미국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수여해왔다.

그런데 이 발언을 놓고 중국 누리꾼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BTS 발언 중 ‘양국이 겪은 고난의 역사’에서 등장한 양국이 ‘한국과 미국’을 뜻해 한국전쟁 당시 중국 군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는 이 같은 중국 누리꾼들의 분노를 보도하며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중국은 최근 미국과의 갈등 국면에서 한국전쟁 당시 중국이 북한을 도와 참전해 미국에 맞섰던 ‘항미원조’ 역사를 강조하며 애국주의, 영웅주의 등을 부각해왔다.

중국 누리꾼들의 분노는 BTS가 모델로 활동하는 삼성과 현대차, 휠라(FILA) 등을 향한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누리꾼들의 집단 공격에 기업들은 12일 공식 웨이보에서 BTS 관련 광고를 삭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국 누리꾼들의 집단행동은 공감보다는 역풍을 맞고 있다. 전 세계 아미(BTS 팬클럽)들이 반발한 것은 물론 주요 외신들도 중국 내 움직임을 비판하고 나섰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12일(현지시간) “중국 누리꾼들이 BTS의 악의 없는 한국전쟁 관련 발언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과거 갭과 메르세데스-벤츠 등도 비슷한 이유로 중국에서 불매운동 위기에 빠졌었다”며 “이러한 움직임은 민족주의가 팽배한 중국에서 외국 브랜드가 직면한 위험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도 “삼성을 포함한 몇몇 유명 브랜드들이 명백히 BTS와 거리를 두고 있다”며 “이번 논란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에서는 대형 업체들 앞에 정치적 지뢰가 깔렸다는 것을 보여준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밝혔다.

중국의 영자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가 “방탄소년단 관련 제품이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사라졌다”고 보도한 기사에도 비판 댓글이 이어졌다. 미국의 한 누리꾼은 “만약 중국 제품에 대해 똑같은 짓을 한다면 어떻겠냐. BTS는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며 불매운동을 멈추라고 강조했다.

한 누리꾼은 “한국인 출신 보이 밴드가 자국을 위해 싸워준 나라의 희생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게 뭐가 잘못됐느냐”고 했다.

트위터에서는 중국과 나치를 합성한 ‘차이나치’(#CHINAZI) 해시태그도 등장했다. 중국 누리꾼들의 행태를 독일의 나치와 같은 극단주의적 민족주의에 빗댄 것이다. 홍콩의 한 누리꾼은 “중국은 북한의 한국 침략을 도왔다. 미국은 유엔군을 이끌고 한국을 위해 싸웠다. 중국이 이 사실에 분노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미국 내 지식인들도 이 같은 중국의 움직임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더그 밴도우 케이토연구소 연구위원도 중국 누리꾼들의 반한·불매 운동에 대해 “오로지 중국의 평판을 깎아내릴 것”이라며 “어글리 차이니즈(Ugly Chinese)가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호석 리 마키야마 유럽국제정치경제연구소(ECIPE) 소장은 “정말 미쳤다(this is nuts)”며 “(이게 바로) 중국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이 자국민은 끝없이 세뇌하면서 외부의 누군가가 진실을 말하면 화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고 했다.

이성윤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교수는 “BTS는 정치적이지 않았다”며 “(같은 논리라면) 시진핑 주석은 6·25 전쟁을 ‘대단하고 정당했다’고 평가한 만큼 참전 국가들이 중국 제품 불매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