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신발을 납품하며 1조원이 넘는 매출액을 내는 ‘창신아이엔씨(INC)’가 회장 아들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다 적발됐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오너 자녀 회사에 과도하게 높은 수수료를 내도록 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창신INC에 약 38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13일 “해외 계열사를 통해 정환일 회장 자녀 회사인 서흥을 부당지원한 창신INC에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시정(향후 재발 방지) 명령과 과징금 총 385억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그룹 본사인 창신INC를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창신INC는 나이키 신발을 OEM 방식으로 제조하는 업체로 국내 신발 제조업 부문 2위 사업자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신발 제조 과정에 서흥이라는 자재 구매대행업체가 끼어들면서 발생했다. 서흥은 2004년 정 회장 자녀들이 최대주주(지분율 99%)로 설립된 자재 구매대행사다. 다른 주요 신발 제조사들은 보통 자재 구매대행을 그룹 본사가 수행하는데 창신INC만 서흥이라는 오너 자녀의 회사를 끼워넣었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창신INC의 부당지원은 2013년 본격 시작됐다. 그해 5월 3개 해외생산법인에 서흥에 지급하는 신발 자재 구매대행 수수료 인상을 지시했다. 해외생산법인들은 완전자본잠식, 영업이익 적자 등 경영 악화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본사의 지시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2013년 6월부터 3년 동안 종전보다 약 7% 포인트 인상된 수수료율을 적용했다. 이 기간 서흥에 수수료로만 총 4588만 달러(534억원)가 지급됐다.
공정위 산정 결과 이는 경쟁사와 비교한 정상가격보다 2628만 달러(305억원) 많은 수준이었다. 이처럼 과도하게 지급된 305억원은 해당 기간 서흥의 영업이익(687억원)의 44%에 달했다.
정진욱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해당 기간 서흥은 구매대행 관련 역할 변화나 추가 비용 투입 등 수수료를 인상해 받을 사유가 되는 어떤 변경도 없었다”며 “오히려 해외 계열사들은 완전자본잠식, 영업이익 적자 등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수수료를 서흥에 지급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창신INC의 이런 부당지원은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300억원이 넘는 돈을 지원받은 서흥은 이 기간 창신INC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 2015년 4월에는 지분율 46.18%에 이르는 창신INC 2대 주주에 올라섰다.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창신INC 최대주주가 정 회장에서 그의 장남 정동흔씨로 바뀌게 된다. 경영권 승계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 창신INC는 실제로 2018년 서흥과 합병을 검토했었다. 다만 2018년 9월 창신INC와 서흥은 합병을 검토했지만 편법증여 논란 우려에 이를 실행하지 않았다. 정 국장은 “정 회장 자녀가 창신INC의 최대주주가 된다면 5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서흥을 통해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우량회사의 경영권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창신INC에 과징금 152억93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부당지원에 동원된 창신베트남에는 과징금 62억7000만원, 중국 청두창신에는 46억7800만원, 창신인도네시아에는 28억1400만원을 부과했다. 서흥에는 과징금 94억63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정 국장은 “대기업이 참여하지 않아 중견기업 집단이 높은 지배력을 보이는 시장에서 발생한 위법행위를 확인·시정했다는 점에서 이의가 있다”며 “부당지원 행위에 동원된 해외 계열사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