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좋은 평생주택 공급 위해 제도 개선 불가피
정부가 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취지에서 ‘소셜믹스(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를 한 단지 내에 혼합하는 형태)’를 표방해왔지만 정작 법규 때문에 최근 5년래 진정한 소셜믹스형 아파트 단지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 아파트 물량에 중소기업 자재만 쓰도록 하면서 빚어진 일인데 정부의 역점 사업이 정부가 만든 법에 의해 막히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질 좋은 평생 주택(공공임대주택)’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LH가 2015년 이후 분양·입주한 분양·임대 혼합단지 18개 가운데 임대 물량과 분양 물량을 여러 라인과 여러 층에 완전히 섞은 ‘라인혼합형’ 방식을 채택한 단지는 단 한 곳도 없다.
LH와 같은 공공기관이 공급하는 혼합단지 아파트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동별로 분리하는 ‘동별분리형’과 같은 동(棟) 안에 임대·분양 물량을 섞는 ‘동내 혼합형’으로 나뉜다. 동내 혼합형은 또 임대·분양 가구가 입구, 승강기, 비상계단 등 주요 설비를 따로 쓰는 ‘코어 분리형’과 주요 설비를 공유하는 ‘라인분리(승강기는 공유하지만, 라인별로 임대·분양을 구분)형’과 ‘층별분리(입구와 계단 등을 공유하지만 층별로 임대·분양을 구분)형’, 임대·분양 물량을 무작위로 혼합하는 ‘라인혼합형’으로 나뉜다.
문제는 LH가 공급한 혼합단지 대부분이 단지 내에서 임대·분양 물량 구분이 쉽게 돼 사실상 임대주택 주민의 꼬리표를 계속 따라붙게 만든다는 점이다. LH 공급 18개 혼합단지 중 9개 단지는 아예 동별 분리를 취하고 있고, 나머지 동내 혼합을 택한 9개 단지도 대부분 코어 분리형이거나 라인·층별 분리 방식을 쓰고 있다. 천 의원은 “소셜믹스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소셜 분리’ 형태”라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발표한 ‘주거복지로드맵 2.0’에서 공공임대주택의 지역사회 공존을 위해 소셜믹스 단지 조성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LH 역시 제대로 된 소셜믹스를 구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관련 법규가 걸림돌이다.
현행 중소기업촉진법(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과 중소벤처기업부 훈령에는 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임대주택을 공급할 때에는 타일 등 건축자재에 중소기업 제품을 쓰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개발·재건축으로 혼합단지를 지을 때 분양 물량에는 이에 대한 규제가 없는데 임대 물량에만 규제가 생기면서 현실적으로 아파트 한 동에 층별, 라인별 무작위로 임대·분양을 섞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다만 이런 규제를 풀어주자니 관련 중소기업들의 반발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천 의원은 “관계부처와 협의해서 제대로된 소셜믹스를 구현하기 위한 해결책을 찾겠다”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