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가구거리’ 한 증권사 대형 쇼윈도 너머로 붉은 매화가 그려진 화려한 방호복을 입은 마네킹이 눈길을 끌었다. 안쪽으로는 색동저고리를 접붙이거나 얼룩덜룩 형광물감을 칠하고, 큼지막한 붓글씨를 휘갈긴 방호복들이 전시돼 있었다. 국내 예술가 22명이 흰 방호복을 캔버스 삼아 그린 작품들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상을 반영하는 문화유산’이라는 해석이 덧붙었다.
서울 지하철 7호선 학동역~논현역 사이 논현동 가구거리와 매장 16곳이 초대형 거리예술전시관으로 변신했다. 왕복 1700m 가구거리를 따라 줄지은 가구점과 이곳의 쇼윈도들이 예술 전시공간이 된 것이다. 748명의 작가가 출품한 1625건의 작품 중, 선별된 100점이 전시됐다. 거리 곳곳에 해당 전시회 ‘아트프라이즈 강남’을 알리는 노란 깃발이 나부꼈다. 지난 9일 강남구 주최로 개막한 이 행사는 오는 18일 폐막한다.
각 가구점에는 아트프라이즈 예술들이 판매 상품들과 조화를 이뤘다. 1650만원짜리 명품 가족 소파 위로 도시 풍광을 표현한 유화가 걸려 있는 식이다. 정순균 강남구청장은 “예술을 꼭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만 접하는 대상이 아니라, 일상 가구점 쇼윈도 속에서 접하는 대상으로 바꾸고 싶었다”며 “일상 속에서 예술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류재현 아트프라이즈 강남 총감독은 “가는 곳마다 작품들이 주변 환경에 녹아들어 있어 관람객들이 전시회를 ‘숨은그림찾기’라고 평가한다”며 “작품 보러 왔다가 물건 사고, 물건 사러 왔다가 작품 보는 이 독특한 구조는 기존 코엑스같은 대형 전시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행사는 쇼윈도를 활용한 방역방식을 다수 선보였다. 건물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쇼윈도 밖에서 다양한 ‘방호복 예술’들을 볼 수 있게 만든 ‘방호복전’이 대표적이다. 지난 10일에는 밴드가 마치 마네킹처럼 쇼윈도 안에 들어가 길거리 관객을 보며 공연하는 ‘쇼윈도 콘서트’가 개최됐다.
작가들에겐 아트프라이즈 강남이 작품 경연장이다. 관람객들은 만 18세 이상 대한민국 거주자라면 누구나 작품 옆 QR코드를 통해 마음에 드는 작품을 투표할 수 있게 했다. 관람객 투표로 선정된 상위 10개 작품 중 전문가들이 5개 작품을 선정해 최우수작에 1000만원, 나머지 우수작에 500만원의 상금을 준다. 내년 ‘아트프라이즈 강남 쇼케이스’ 출전 기회도 부여한다. 한편 행사에 참여한 가구점들은 상품 홍보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