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영화계의 거장 장이머우 감독이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의 중국식 표현) 당시 중공군 영웅을 다룬 영화를 제작한다. 미국의 대중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중국에선 반미 감정을 자극하는 영화가 잇따라 개봉하고 있다.
11일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장 감독은 중국군 저격수가 미국의 적을 격파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차가운 총’(The Coldest Gun)’ 연출을 맡았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장타오팡은 중국인민지원군(CPV) 소속으로 1953년 한국전쟁 막바지 32일 동안 435발의 총탄으로 미국인 214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 때 장타오팡의 나이는 불과 22세였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전쟁터에서 그는 적군의 엄중한 포위망을 뚫었고 치열한 전투를 통해 그들을 격파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한 영화 평론가는 “이 영화는 미국이 강하지만 천하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할 것”이라며 “미국의 압박에 대응해 중국인들의 용기와 결의를 북돋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도 들썩였다. “이런 영웅은 큰 화면으로 보는 게 마땅하다” “우리가 한때 미국을 어떻게 이겼는지 알아야 한다”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장 감독은 1988년 데뷔작인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대상을 받아 세계적인 명장으로 떠올랐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을 맡았고,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알리는 홍보 영상도 제작했다. 중국 영화계는 최근 국제 정세와 무관하게 개성있고 노련한 감독이 만들어낼 영웅 영화 자체에 큰 기대를 보이고 있다.
올해 중국에선 항미원조전쟁을 배경으로 반미 감정을 자극하거나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 TV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전쟁 70주년 기념일인 오는 25일에는 금강산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린 ‘금강천’이 개봉한다. ‘압록강을 건너다’는 제목의 40부작 TV 시리즈도 지난 8월 촬영에 들어갔다.
이른바 ‘국뽕’ 영화가 중국에서 인기를 끄는 데는 미국과의 갈등 국면 외에 코로나19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고 경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국민적 자부심과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이후 노골적 비난을 자제해오던 중국 관영 매체들은 대놓고 재선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대표 핀테크 기업인 앤트그룹과 텐센트의 전자결제 플랫폼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국 매체들은 이러한 제재가 다음 달 미 대선 전 시행될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하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선거를 의식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로벌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여론조사에 유리하다면 특정 기업, 국가, 심지어 국제기구까지 표적으로 삼고 있다”며 “미국은 이미 화웨이와 틱톡에 대해 날강도같은 제재를 가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중국 금융을 공격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자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