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1위 기염을 토한 방탄소년단 ‘Dynamite’, 블랙핑크 신곡 ‘Lovesick Girls’, MBC ‘놀면 뭐하니?’ 환불원정대의 ‘DON’T TOUCH ME’…. 이 쟁쟁한 곡들에 맞서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 상위권에 자리매김한 노래가 있다. 바로 그룹 B1A4 산들이 부른 ‘취기를 빌려’다. 이 곡의 흥행이 유독 눈길을 끄는 이유는 ‘취기를 빌려’가 드라마도, 영화도 아닌 웹툰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이어서다.
K웹툰이 붐을 일으키면서 OST가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음웹툰 ‘취향저격 그녀’의 OST로 지난 7월 차트에 처음 진입한 ‘취기를 빌려’는 2달여째 장기 흥행 중이다. 순위도 최상위권이다. 11일 기준 멜론 일간차트에서 이 노래는 ‘Dynamite’ ‘DON’T TOUCH ME’에 이어 3위에 올랐고, 벅스 주간 차트에서는 5위에 랭크됐다. 이밖에도 ‘내 마음이 움찔했던 순간’, ‘밤새’, ‘너의 밤은 어때’ 등 ‘취향저격 그녀’ OST들이 차트 상위권을 오르내리고 있다.
2018년 연재를 시작한 ‘취향저격 그녀’는 누적 조회 수가 2억3000만회에 달하는 인기 웹툰이다. 로즈옹 작가 작품으로 첫눈에 반한 호찬 선배와 사랑을 꿈꿨던 여주인공 해닮이 피치 못하게 동거를 시작한 찬열과 토닥거리며 사랑을 만들어 가는 캠퍼스 연애물이다. 다음웹툰·네이버웹툰 등 웹툰 플랫폼에서 전통 강세였던 로맨스 장르인 데다 특유의 재기발랄함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의 인기는 음원에 관한 관심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팬들은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이나 음원사이트로 노래를 따로 듣거나 음원을 틀어놓고 ‘취향저격 그녀’를 본다. 온라인에는 “노래를 듣고 웹툰에 입문했다”는 글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톱배우가 출연하는 인기 드라마 OST도, 인기 그룹 신보도 아닌 웹툰 OST가 이처럼 인기를 끄는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서도 작품에 몰입감을 더하려는 방편으로서 웹툰과 노래의 결합은 꾸준히 시도됐다. 대표적으로 현재 네이버웹툰에 연재 중인 232 작가의 인기 목요 웹툰 ‘연애혁명’을 들 수 있다. ‘연애혁명’은 회차마다 내용과 어울리는 느낌의 피아노 연주곡 등을 삽입해 놓았다. 독자들은 기호에 따라 노래를 틀거나 끄고 웹툰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유명 작곡가나 가수가 웹툰 OST에 참여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취향저격 그녀’ OST 작업에는 그레이 규현 카더가든 크러쉬 몬스타엑스 정은지 등 인기 가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K웹툰 시장이 그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웹툰과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드라마·애니메이션·영화로 재창작하는 IP(지식재산권) 활용 붐을 타고 올해 다음웹툰·네이버웹툰 등 IP 거래액은 1조원을 가뿐히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덕분에 웹툰으로서는 기존 독자층이 아니던 가수 팬들도 끌어들일 수 있게 됐다.
IP 확장 과정에서 OST 제작은 더 활기를 띠고 있다. 가령 카카오페이지는 올해 초 가수 이승철이 부른 웹툰 ‘달빛조각사’의 OST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카카오페이지 대표 IP로 인기 동명 웹소설을 다듬은 ‘달빛조각사’를 게임에 이어 음악까지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최근 공개된 네이버웹툰 IP ‘노블레스’ 애니메이션 OST에는 가수 김재중과 그룹 오마이걸이 참여했다.
미니시리즈 OST가 방영 종료와 함께 인기가 시들해지는 것과 달리 웹툰 OST는 기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관계자들은 이 같은 OST 작업을 통해 웹툰 시장의 양적·질적 발전을 또 한 번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