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美·EU 갈 때 방사능 8배↑…“여행 폭증 전 관리해야”

입력 2020-10-11 12:16 수정 2020-10-11 13:21


항공기 탑승객이 미국·유럽 노선을 왕복 6회 이상 이용할 경우 피폭되는 방사선량이 연간 권고 수치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멈춘 이후 해외여행 폭증이 예상되는 가운데 승무원뿐만 아니라 일반 승객 역시 방사선 피폭량을 인지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2019년 국내 항공사 주요 노선별 피폭 평균’ 자료에 따르면, 고위도 비행 노선에서 평균 피폭선량이 저위도 비행 때보다 약 8배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고위도 노선은 북위 50도 이상 지역을 비행하는 구간으로, 인천국제공항과 미국 동부 전체·서부 일부 도시, 유럽 주요 도시를 오가는 장거리 노선이 다수 포함돼 있다. 북극점에 가까울수록 강해지는 우주방사선으로 인해 인체에 노출되는 피폭선량이 많아지는 것이다.

허 의원실은 지난해 고위도 비행 노선인 인천-뉴욕 노선의 평균 피폭선량이 대한항공 기준 0.0853mSv(밀리시버트), 인천-런던 노선은 0.0645mSv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저위도 구간인 인천-방콕 노선의 평균 피폭선량은 0.0109mSv, 인천-시드니 노선은 0.0279mSv였다.


2019년 항공사별 주요 노선 평균 피폭방사선량 자료.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자료대로면 승객이 1년간 미주·유럽을 왕복 6회 이상 오갈 경우 현행법상 피폭선량 권고 수치를 넘어서게 된다. 원자력안전법에서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기준에 맞춰 일반인의 누계 피폭선량이 연 1mSv가 넘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우주방사선 피폭량이 많을수록 암·백혈병 발병 가능성도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다양한 형태로 날아오는 우주방사선은 인체에 강한 영향을 미쳐 DNA 손상·변이 등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행시간이 긴 승무원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출장 등으로 비행이 잦은 경우, 적은 양의 피폭에도 위험할 수 있는 아동·임산부 등은 본인의 누적 피폭량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사선에는 ‘안전한 노출량’이 없어 가능한 예방·방호 방법을 모두 동원해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국제 사회의 공통된 인식이다. 방사선에 대해 통용되는 이른바 ‘합리적 최소화(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원칙이다.

해외에서는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다. 전미승무원협회(AFA)는 “승무원, 조종사와 마찬가지로 승객들도 방사선에 노출되고, 누구든 자신의 건강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영국건강보호국(The Health Protection Agency)은 “승객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며 우주방사선의 위험을 항공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알려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우주방사선 피폭 위험성에 대한 공론화와 후속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승무원 출신으로 처음 국회에 입성한 허 의원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폭발적으로 늘어날 해외여행 수요에 대비해 국내 항공사와 정부·원자력안전위원회가 승객에게 누적피폭량을 사전 인지시키는 등의 피폭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 과방위는 12일 원안위와 한국원자력안전재단, 한국수력원자력 등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실시한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의원실 제공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