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피해자에 ‘피의자’ 처분한 검찰…헌재가 뒤집었다

입력 2020-10-11 09:49 수정 2020-10-11 10:01

인신매매를 당했다는 피해자 호소에도 뚜렷한 증거 없이 성매매 혐의를 인정한 검찰 처분을 두고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걸었다.

헌재는 태국인 여성 A씨가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내렸다고 11일 밝혔다. 기소유예란 기소권을 가진 검사가 사건이 가볍다고 판단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일종의 불기소처분이다. 피의자는 처벌을 받지 않지만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A씨는 태국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기 위해 취업 알선자가 보내준 항공권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하지만 알선자를 따라간 곳은 애초 약속과 달리 성매매가 이뤄지는 퇴폐 마사지 업소였다. 알선자는 A씨에게 성매매를 강요했고 소개비를 갚을 다른 방법이 없던 A씨는 결국 네 차례 성매매를 했다.

사건을 수사하던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A씨의 성매매 알선 혐의를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A씨는 자신은 피해자라며 처분에 불복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A씨의 자발적 성매매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제적 여건, 언어장벽 등 문제로 A씨가 알선자 요구를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 없었다는 점이 고려됐다.

특히 A씨가 성매매 직후 방콕으로 출국하려다가 알선자에게 붙잡혀 감금된 점, 마사지업소 주인이 A씨가 ‘인신매매 피해자’임을 인정한 점 등에 비춰 성매매 피해자라는 A씨 주장은 신빙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A씨의 범죄 혐의를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을 했고 이는 A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결정이라는 것이 헌재 판단이다. 헌재 관계자는 “성매매 혐의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성매매 피해자임을 주장하면 이에 반대되는 증거를 검사가 수사해야 함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