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북한이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실망’이라는 표현을 쓰며 공개적인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북한이 핵 실험이나 ICBM 시험 발사 등 ‘레드 라인’을 넘지 않은 데 대해 안도감도 감지된다. 북한이 오는 11월 3일 미국 대선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무리한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한 셈이다.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10일(현지시간) 북한의 열병식과 관련한 국민일보의 질의에 “북한이 금지된 핵·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계속 우선시하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비전을 이행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일관되고 실질적인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미국 국방부의 반응은 더 조심스러웠다. 존 서플 국방부 대변인은 국민일보의 질의에 “우리는 (북한의) 열병식과 관련된 보도를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의 분석작업이 진행중이며 우리는 이 지역의 동맹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언론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열병식 연설에서 미국을 언급하지 않은 데 주목했다. 이를 두고 북한이 이번 열병식을 통해 미국을 자극하거나 대미 무력시위로 비칠 행동들을 자제한 것으로 해석했다. AP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 대선을 4주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열린 행사에서 미국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피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신형 ICBM 공개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이번 열병식이 미국 대선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에다 미국 대선으로 정신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열병식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의 이번 열병식은 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향후 (북·미) 협상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미사일 시험발사 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무리하게 미국 대선판에 뛰어들기 보다는 대선 이후로 시선을 돌렸다는 분석인 것이다. 미국 대선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북·미 관계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상황 관리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신들은 김 위원장의 행동에도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로이터통신은 김 위원장이 쌀쌀한 심야인데도 30분 정도의 연설 도중에 분명히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북한 고위 당국자들, 장병들과 주민 등 이번 열병식에 참여하거나 참관한 사람들 중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도 관심을 끌었다.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