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역 앞의 큰 길가에는 나란히 늘어선 펫샵들이 있습니다. 전시된 새끼 고양이와 강아지가 얼마나 귀여운지, 유리창 너머의 당신에게 애교를 부립니다.”
- 충남 OO시 영문판 블로그 중
눈도 못 뜬 강아지들이 전시된 골목이 OO시 공식 블로그에 소개됐습니다. 어느 동네에나 흔한 것이 펫샵이라지만 관공서에서 관광 명소로 소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펫샵의 부도덕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리관에 전시된 어린 동물에게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요? 그동안 무심코 지나친 펫샵 강아지들의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식분증·입질…놓쳐버린 사회화 골든타임
개·고양이는 생후 3~8주가 되면 동족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이를 사회화시기(socialization period)라고 합니다. 이어서 생후 7~12주는 인간과의 사회화 기간입니다.
이 시기에 부모견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낯선 견공과 인사하는 법, 적절한 강도로 깨무는 방법, 배변하는 장소를 고르는 방법 등을 세심하게 가르치죠. 배움의 시기를 놓친 강아지들은 이후 ▲과도한 짖기 ▲물기 ▲분리불안 ▲식분증 등 이상행동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43조는 ‘동물판매업자는 생후 2개월 이상인 개·고양이를 판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강아지가 부모로부터 충분한 보살핌을 받도록 보호하자는 취지이죠.
견공의 사회화는 생후 8주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생후 7~11주는 다양한 존재를 만나 담력을 키우는 공포학습시기(Fear Impact Period)입니다. 이때 펫샵에 갇혀있으면 이후 다른 개·사람을 공격적으로 대할 가능성이 크죠.
이런 내막을 모르고 펫샵에서 강아지를 산다면 이웃 갈등 및 행동교정 문제로 막대한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끔찍한 고향, 불법 강아지 공장
상품을 전시, 판매하려면 그것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거대한 공장이 필요합니다. 살아있는 강아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펫샵 강아지들은 ‘강아지 공장’(Puppy Mill)에서 대량 생산됩니다.
강아지 공장은 수백 마리의 부모 견에게 출산을 강제하는 공간입니다. 작고 어린 강아지를 최소한의 비용으로 대량 생산하려는 속셈으로 공장 업자들은 분뇨처리·관리인력 배치 의무를 위반합니다. 뜬장에 갇힌 수백 마리의 성견들은 죽는 날까지 출산을 반복하며 태어난 자식들은 피부병, 근친교배로 인한 유전병에 시달리죠.
지난 2014년, 7살의 나이에 14번 강제 임신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말티즈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강아지 공장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016년 SBS 동물농장의 탐사보도,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졌지만 강아지 공장은 지금도 전역에서 암암리에 운영되고 있습니다.
펫샵과 강아지 공장은 지독한 공생 관계입니다. 어린 강아지들은 펫샵에서 팔리고, 미처 팔리지 못한 강아지들은 공장에 되팔려 ‘출산 기계’로 이용됩니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순진한 동물과 시민들에게 돌아가죠.
펫샵은 귀엽지 않다
문명은 야만을 감추는 작업이라는 어느 문화학자의 말처럼 펫샵의 화려함 이면에는 동물들의 비명이 숨어 있습니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어느덧 1500만명에 이릅니다. 그들의 눈에 펫샵 강아지들은 더 이상 귀엽지 않습니다. 작은 눈망울에서 슬픔을 읽는 시민이 많아질수록 반려문화는 더욱 성숙할 것입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