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덩이 속 기어서 대피” 긴박했던 울산 화재 탈출 상황

입력 2020-10-09 16:15 수정 2020-10-11 12:58
8일 오후 울산시 남구 한 주상복합 아파트서 난 불이 9일 아침까지 계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전 이재민 임시 거처로 마련된 울산시 남구 스타스 호텔에서 만난 아르누보 아파트 주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탓에 녹초가 된 모습이었다. 호텔 3층에 마련 이재민 지원센터에는 답답함과 ‘안타까움’ ‘안도’ 등의 감정이 공존했다. 현재 이곳에는 175명이 머무르고 있다.

하루아침에 살던 집을 떠난 한 주민은 망연자실해 했다. “워낙 다급해 아무것도 가져나오지 못했다”는 한 입주민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주민 가족들은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서로의 손을 꼭 붙잡았다.

대피한 주민은 당시 상황을 ‘아비규환’이라고 설명했다. 31층에 사는 박지영(32)씨는 “거실에서 TV를 시청하다 옆에 불기둥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복도에는 벌써 연기가 자욱했고 화재 탓으로 현관 번호키 문도 작동이 안 돼 발로 차고 탈출했다”면서 “앞집 현관은 화재로 문틀이 녹아 있었고 앞이 보이지 않아 휴대전화 조명을 켜고 기어서 비상구까지 가서 계단으로 33층 옥상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8일 오후 울산시 남구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난 화재가 9일 오전까지 꺼지지 않아 헬기가 동원돼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다른 주민도 화재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탈출한 덕에 목숨을 구했다. 그는 “매캐한 냄새가 나서 직감적으로 화재로 인지하고 맨발로 그나마 빨리 1층으로 탈출해 생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입주민들은 불이 외벽에 옮겨붙기 전부터 내부에서 타는 냄새가 났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비상벨과 안내방송이 늦어 제때 대피를 하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22층에 거주하고 있는 김민성(50)씨는 “전날 화재경보 시험 방송이 나왔지만 화재 당시에는 화재 경보 방송이 작동 안 된 거 같다”면서 “타는 냄새 나고 뭔가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소방대원이 와서 함께 대피했다”고 말했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화재 당일 물에 적신 수건으로 입과 코를 감싸고 침착하게 대피했다. 수백명의 주민이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지면서 건물 일대는 한때 아수라장이 됐다.

가족들의 행방을 알지 못하는 일부 주민은 아파트 안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시도하며 불길이 치솟는 건물을 바라보고 흐느끼기도 했다.

24층에 사는 한 주민 “집으로 돌아와 보니 건물에 불길이 치솟는 중이었고 소방차 수십대가 출동해 있는 상태였다”며 “집 안에 가족들은 소방관과 33층에 대피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전했다.

28층에 사는 주민도 “정전이라고 생각했는데 5분 정도 지나자 불길이 올라왔고 급하게 대피를 하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아르누보 아파트 관리소장 심상배씨는 8일 화재는 12층 거실 시스템 에어컨 누전으로 천장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12층 주민의 연기 냄새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해당 호수에 가서 확인을 해보니 거실 천장에 설치된 시스템 에어컨 쪽에 연기가 났지만 불꽃은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일단 전기 전원을 차단하고 신고를 받고 도착한 소방관과 함께 다른 층을 점검하는 도중에 화재가 발생한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방 수신반이 정상적으로 작동됐기 때문에 연기가 감지되자 자동으로 화재 안내방송이 정상적으로 나왔다”고 덧붙였다.

울산=조원일 기자 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