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당국에 의해 허가가 취소되자 일본 정부가 “전향적인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외교부는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에 정부가 외교적으로 관여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은 현지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가 지난달 말 설치한 것으로, 당초 1년 동안 전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테구청은 지난 7일 돌연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내용의 행정명령 공문을 보냈다. 신청 당시 알리지 않은 설명문을 설치해 독일과 일본 관계에 긴장이 조성됐다는 이유에서다.
슈테펜 폰 다쎌 미테구청장은 “한일 양국의 정치적으로 복잡한 갈등에 기반해 있는 (문제를) 독일에서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미테구에는 관대하고 개방적이고 평화롭고, 존중하는 태도로 서로를 대하는 100개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이런 단합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역사적 갈등에서 한쪽 편을 드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정에는 일본 정부 차원의 압박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프랑스를 방문 중이던 지난 1일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과 영상통화에서 베를린 소녀상이 철거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베를린 소녀상 허가 취소에 대해 “계속 상황을 주시하겠다”며 “전향적인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의 소녀상 철거 압박에 대해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에 정부가 외교적으로 관여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이것을 인위적으로 철거하고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고, 일본 스스로 밝힌 바 있는 책임 통감과 사죄 반성의 정신에도 역행하는 행보”라고 했다.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이를 두고 “세운 사람이 민간인일 뿐 누가 보나 한일 간 국가갈등의 표출인데도 (외교부는)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에 일본 정부가 외교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니, 현실적으로 국가 간 문제가 되고 있는데도 ‘징용문제는 사법부에 맡겨야 한다’는 대통령이나 외교부나 마인드가 똑같다“고 비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