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밤 울산의 주상복합 아파트 화재사건을 접한 시민들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전해지는 현장 사진과 영상을 보며 경악했다. 33층짜리 거대한 건물이 마치 불붙인 촛불처럼 순식간에 화르륵 타오르는 장면이 초대형 자연재난을 방불케했기 때문이다. 길거리로는 불벼락이 내리듯 불붙은 건물잔해들이 쏟아졌다. 네티즌들은 “석유 뿌린 나무로 지은 것 같다” “어떤 자재로 지었길래 불이 저렇게 빨리 번지냐”며 대형화재 사건마다 반복되는 논란에 분노를 표했다.
불타는 실시간 화재 장면에 놀란 시민들
9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네티즌들은 불에 탄 울산 주상복합 건물 외장재가 알루미늄 복합 판넬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알루미늄 복합 판넬은 열에 강하지 않다. 판과 판 사이에 충진재로 들어간 수지는 가연성 물질로 화재에 취약하다. 미관을 위해 알루미늄판에 화학제품으로 색을 입혔기 때문에 한 곳에 불이 붙으면 건물 외벽 전체로 번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 화재처럼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 불길이 퍼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네티즌들은 “건물 외벽을 석유 뿌린 나무로 지었나” “15층 이상은 외벽을 콘크리트로만 마감하게 해라.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 왜 방치하냐”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아무리 난연·불연성 소재를 써도 고열이면 탄다”며 “외장재보다는 바람이 화재 진압에 더 큰 문제였다”는 의견도 있다. 이날 울산광역시에는 강풍주의보가 발령됐다.
고가사다리도 없으면서 고층아파트 허가는 내주나
네티즌들은 소방 당국의 초고층 화재 진압 능력에도 의문을 표하고 있다. 울산광역시에는 초고층 화재를 진압하는 70m 고가사다리차가 없어서 화재 진압이 늦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초반 살수 작업은 중간층까지만 이뤄졌다. 고층부는 소방대원들이 개별 호실에 진입해 화재를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최대 건물 23층 높이까지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70m 고가사다리차는 10대뿐이다.
네티즌들은 이같은 초고층 화재 진압 과정을 보면서 “광역시에 사다리차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고층 화재진압 장비 신속하게 제작해달라. 수도 없이 짓는 초고속 아파트 화재 대비 초고층 진압 장비 정부 차원의 제작이 필요해 보인다” “70m 고가 사다리차도 없는데 초고층 아파트는 왜 허가를 내주냐.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선진국 찾지 말고 국민의 안전부터 생각해라”는 댓글을 쏟아내고 있다.
적절한 장비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초고층 화재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을 향한 위로도 쏟아지고 있다. 이번 화재에서 주민들을 극적으로 구한 소방관들 이야기가 담긴 기사에는 “우리 소방관들, 그대들이 이 나라의 영웅이다. 고맙고 감사하다” “33층에서 1층까지 성인 여자를 업고 내려오신 소방관님 정말 존경스럽다”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다만 일부 네티즌들은 “항상 고층 화재는 진압에 문제가 많았다”며 “소방관들에게 안전한 장비를 달라”며 분노하기도 했다.
몸 던진 소방관과 침착한 주민…기적의 주인공들
전날 오후 11시7분쯤 울산 남구 삼산동 33층짜리 주상복합건물 삼환아르누보에서 불이 났다. 소방청은 화재 1시간 30분 만인 9일 오전 0시 30분쯤 삼환아르누보를 집어삼킨 큰 불길을 잡았다. 하지만 이날 새벽 건물 18층 부근에서 다시 화염이 솟아 헬기까지 동원되는 등 오전 내내 사투를 벌였다. 소방당국은 이날 오후 12시 35분부로 초진을 완료했다.
사망자는 없었다. 이는 소방당국의 신속한 대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소방당국은 이날 ‘12층에서 연기가 발생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현장을 확인하며 화재에 대응했다. 화재 확산 전에 소방대원들이 출동해 있었던 덕에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인근 소방관에서 소방력을 모두 동원하는 ‘대응 2단계 발령’ 등 후속 대응이 적기에 이뤄진 이유다.
주민들의 침착한 대응도 빛났다. 화재 당시 불이 난 건물을 포함해 인근 주민 수백명이 대피하는 등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화재 직후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한 주민 40여명이 옥상으로 대피하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물에 적신 수건을 입에 대고 자세를 낮춘 채 빠져나오는 등 화재 대피 매뉴얼에 따라 행동했다. 고층부 주민들도 피난 공간이 마련된 15층, 28층, 옥상 등지로 피해 소방대원들의 지시를 따르며 구조를 기다렸다. 한 네티즌은 “이렇게 큰 화재에 사망자가 없다는 건 놀랍다”며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박준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