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참 검사로 재직하던 정명호(63·사법연수원 13기) 서울고검 검사가 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퇴임식을 갖고 1983년부터의 37년 검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보람된 순간도 안타까운 순간도 많았다”며 “수사는 정직해야 한다는 지론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10기수 선배인 그는 “총장이 지금 사면초가지만, 꿋꿋이 버티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검사는 37년 검사 인생 중 가장 보람됐던 순간을 9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소속으로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사건을 수사하던 때로 꼽았다. ‘6공 최대 비리’로 꼽혔던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은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 다수,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을 구속됐다. 정 검사는 “해프닝이 많았던 수사였고, 내가 맡은 부분에서 의미 있는 장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원배 의원(당시 평민당)의 양심선언도 나왔고, 서청원 의원(당시 민자당)이 서류를 위조해 보낸 게 문제가 됐었다”고 했다.
그가 속한 수사팀은 비리에 연루된 국회의원 다수의 자백을 받았다. 어려운 수사였지만 정직하게 진행한 결과 사건 관계인들이 마음을 열고 진술을 시작했다고 한다. 정 검사는 “그 바람에 일이 커져 윗선에서는 탐탁치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면서도 “열심히 수사해서 그렇게 된 것이니 상당한 보람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중수부에서만 2년 8개월을 근무한 그는 인지사건을 맡는 특수 검사로 분류됐었다. 91년 서울대 음대 입시부정 사건도 그가 참여한 수사였다. 당시 사건은 연세대 음대와 이화여대 음대의 입시부정 수사로까지 확대됐다. 수사 이후에는 배려할 점을 생각했다고 한다. 94년 삼성전자의 벙커C유 무단방류 사건 당시에는 폐기물관리법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수질환경보전법으로 기소하면 5년간 해외 수출이 막힌다고 해서 찾은 방도였다. 정 검사는 “경제가 망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퇴임식 직전까지도 공판 등 업무를 여느 검사들과 똑같이 수행했다. 지난해에는 서울고검 형사부에서, 올해에는 송무부에서 일했다. ‘용퇴’ 문화가 있는 검찰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연유를 물었더니 “검사의 ‘사’ 자는 ‘선비 사(士)’가 아닌 ‘일 사(事)’”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 검사는 “꼭 출세할 필요도 없고, 검사는 그저 국가를 위해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그래서 일 사 자를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불거진 우리 사회의 진영논리를 안타까워했다. 그러한 편가르기 경향이 검찰 안으로도 스며들었다고 했다. 정 검사는 “검사 생활 중 대통령의 아들들이 구속되는 것을 봐 왔다”며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졌어도 수사는 제대로 했는데, 최근에는 수사 자체가 왜곡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거론하며 “법률가답지 않은 행동들을 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정 검사는 “내가 검사 생활 내내 제일 싫어한 것이 거짓말이었다”고 덧붙였다.
정 검사는 후배들에게 “검사의 양심을 버리지 말자”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양심은 스스로가 정확한 정답을 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후배 중엔 윤 총장도 있다. 정 검사는 윤 총장을 두 번 ‘데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윤 총장은 대전과 성남에서 함께 근무했는데 아주 올곧은 사람이라는 걸 내가 안다”고 했다.
검찰을 떠나면서 윤 총장에게 당부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윤 총장을 향해 “지금 사면초가에 있는 듯하지만, 지금껏 해온 초심대로 꿋꿋하게 버틴다면 세상은 정의의 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검사는 “내가 총장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