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최정원이 여배우의 ‘나이 듦’을 말하다[인터뷰]

입력 2020-10-08 18:04
최정원은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해 오로지 뮤지컬 배우로 30년 넘게 달려왔다. ‘맘마미아’ ‘시카고’ 등 유수의 작품에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역할을 맡았지만 ‘고스트’에서는 주인공의 조력자인 코믹한 사기꾼 영매를 연기한다. 신시컴퍼니 제공

스포트라이트 한 발 비껴간 무대에서 스타 배우가 거침없이 망가졌다. 최정원에게 뮤지컬 ‘고스트’는 다른 의미의 ‘인생작’이다. 7년 전 초연 당시 최정원은 이전과 완벽히 달랐다. 하지만 그는 “내려놨다”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새로운 도전인 거죠. 제가 이 배역을 따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요.(웃음) 오디션 당시 대본을 전부 외워갔어요. 그만큼 간절했던 작품이에요.”

지난 6일 막 올린 뮤지컬 ‘고스트’는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 ‘사랑과 영혼’을 원작으로 한다. 2011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됐으며 한국에서는 2013년 공연됐다. 최정원은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해 오로지 뮤지컬 배우로 30년 넘게 달려왔다. 그리고 ‘맘마미아’ ‘시카고’ 등 유수의 작품에서 주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고스트’에서는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 그가 연기하는 사기꾼 영매 오다메는 샘과 몰리를 이어주는 유쾌한 메신저다.

최정원은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해 오로지 뮤지컬 배우로 30년 넘게 달려왔다. ‘맘마미아’ ‘시카고’ 등 유수의 작품에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역할을 맡았지만 ‘고스트’에서는 주인공의 조력자인 코믹한 사기꾼 영매를 연기한다. 신시컴퍼니 제공

50대의 최정원은 10여 년 전부터 주연 자리를 후배에게 내어주고 조연으로 무대에 섰다. 창창했던 20~30대를 지나 40대에 들어서면서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당차고 풋풋한 페기 소여보다 관능적인 도로시 브록이, ‘시카고’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록시 하트보다 농도 짙은 벨마 켈리가 잘 어울리는 배우가 됐다. ‘고스트’에서도 젊고 가련한 여주인공 몰리 젠슨이 아니라 완숙하고 질퍽한 오다메를 선택했다. “주인공은 질리도록 했잖아요. 코믹 연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망설이지 않았어요.”

주변은 만류했다. 조역이라도 오다메는 도로시나 벨마와 달랐다. 더 ‘망가져야’했다. 이런 우려는 가뿐히 넘길 수 있었지만 오다메를 하기에 ‘몸집이 작다’는 지적은 오래 고민하게 했다. 여러 프로덕션에서 오다메가 구축한 푸근한 이미지를 방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정원은 “몸은 작지만 속은 넓은 오다메를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한국 버전으로 재탄생시키겠다고 제작진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첫 공연을 하던 날은 아직도 선명하다. 관객의 환호가 최정원을 향했다. ‘아, 해냈구나.’ 그는 이 작품으로 제8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오다메는 최정원이 끈질기게 개발한 끝에 완성한 캐릭터다. 입체적인 특징을 살리기 위해 여러 설정을 추가했다. 그는 영혼과 인간 모두와 대화할 수 있다. 영혼을 대할 때는 가식 없이 툴툴거리는 본연의 모습이 튀어나온다. 인간과 대화할 때는 다소 공손하고 반듯한 말투다. 톤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 간극을 살펴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다.

7년 전과 지금의 오다메에도 차이를 뒀다. “그때는 코믹함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따스함에 방점을 찍었어요. 사기치며 전전하는 캐릭터지만 어머니와의 관계, 가정환경 등 전사를 담으며 이해의 폭을 넓혔고, 샘의 부탁을 외면하지 않고 대가 없이 돕는 인간미를 강조하고 싶어요.”

‘여배우의 나이 듦’을 묻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을 하다 보면 어떤 날에는 그의 엄마가, 또 어떤 날에는 그의 친구를 맡는 시기가 와요. 그때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모든 캐릭터에는 힘이 있죠. 그 길의 끝에 제가 있으려고요. 60대가 돼도, 70대가 돼도, 늘 무대에 있을 거예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잘해야죠.”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