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있는 북으로 날 보내주오”…조성길 부인 제보 일 키웠다

입력 2020-10-08 17:36 수정 2020-10-08 18:15
잠적 수개월 전 이탈리아 지역 행사 참석한 조성길 북한 대사대리. 연합뉴스

‘딸이 있는 북한에 가고 싶다’던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대사대리 부인 이모씨의 제보로 조 전 대사대리의 국내 입국 사실이 알려졌지만 오히려 가족 전체의 신변이 더욱 위협받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이 전격 공개되면서 북한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씨의 북한 송환도 법적 근거가 없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관측도 있다.

15개월가량 비밀에 부쳐진 조 전 대사대리의 망명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씨의 제보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애초에 한국행을 원하지 않았다. 딸과 가족이 있는 북한으로 보내달라’는 내용의 제보를 최근 일부 언론사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우리 국민이 된 사람을 북송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북송한 탈북민은 현재까지 단 한 명도 없다. 이씨 역시 귀순 의사를 적는 서류를 자의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북한행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8일 국회 외통위 국정감사에서 “국민적인 공감대와 합의, 이런 과정이 진행되면서 이 문제가 처리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면서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북송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형편이 못 된다”고 밝혔다.

오히려 이번 일이 가족 전체 특히 딸에 대한 신변 위협을 가중시켰다는 시각도 있다. 북한은 고위급 탈북민의 한국행 사실이 공식화될 때마다 격앙된 반응을 보여 왔다. 북한은 과거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귀순 사실이 공개된 지 사흘 만에 논평을 내고 태 의원과 우리 정부를 맹비난했었다. 정보 당국과 조 전 대사대리가 1년 넘게 망명 사실을 함구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북한도 조 전 대사대리의 귀순을 이미 파악하고도 모른 척 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사실이 공개된 만큼 다른 일련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태 의원도 지난 7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조 전 대사대리의 딸에게 가혹한 처벌이 내려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었다.

물론 별다른 처벌 없이 넘어갈 수도 있다는 상반된 전망도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 전 대사대리가 북한 체제를 공개 비난한 적도 없고, 이씨 역시 북한행을 희망하고 있어 딸을 처벌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조 전 대사대리의 딸이 강제북송이 아닌 자진 입북했다면 처벌할 근거도 부족하다는 해석도 있다.

조 전 대사대리는 24시간 경찰의 밀착 경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국내 거주 사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면서 경호 업무가 국가정보원에서 경찰로 이관된 것으로 보인다. 통상 비공개 고위급 탈북민 경호는 국정원이, 공개 인물 보호는 경찰이 맡는다. 황장엽 전 비서 역시 귀순 초창기에는 국정원의 경호를 받았었다. 현재 20명 안팎의 경찰이 교대로 조 전 대사대리를 경호하고 있다고 한다.

조 전 대사대리는 북한에 남은 딸의 안전을 고려해 지금처럼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북 소식통은 “조 전 대사대리가 언론 노출은 최대한 자제하며 지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