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대학병원장들… 정작 의대생들은 “사과는 무슨”

입력 2020-10-08 17:32
김영훈 고려대학교 의료원장을 비롯한 대학병원장들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미응시 문제'관련 사과성명을 발표하기 앞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윤동섭 연세대의료원장, 김연수 서울대학병원장,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 김영훈 고려대학교 의료원장. 권현구 기자

주요 대학병원장들이 현 의과대학 본과 4학년들에게 의사 국가고시 추가 응시 기회를 달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정부는 국시를 추가로 시행하기 어렵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일축했다.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의대생 국가고시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연수 서울대병원장, 윤동섭 연세대의료원장,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도 함께했다.

병원장들은 국시 추가 응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당장 2700여명의 의사가 배출되지 않을 수 있다며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김 원장은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질책은 선배들에게 해달라”고 했다.

국시 논란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언급됐다. 이날 오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은 “학생들이 시험에 참여하려는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고 있다”며 “시험이라는 프로세스를 망가뜨렸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사과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대생 상당수가 사과에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의 한 의대생 김모(27·여)씨는 “직접 사과는 물론이고 대리 사과 또한 원치 않는다는 동기들이 많다”고 전했다.

앞서 올해 의사 국시 실기시험 대상자(3172명)의 86%에 해당하는 2681명의 의대생은 의대 정원 확대 등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집단으로 응시를 거부했다. 그러나 전국 40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 본과 4학년 대표들은 지난달 24일 공동성명을 내 이를 뒤집고 응시 의사를 표했다. 사과는 하지 않았다.

국시 논란이 추가 응시 기회 없이 마무리될 경우 내년도 공중보건의와 수련병원의 인턴 인력은 감소할 전망이다. 정부는 인력 재배치 등을 통해 의료공백을 막겠다는 입장이지만 병원 측은 추후 여파가 5년 이상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장은 국감에서 “(국시 재응시가 없으면) 병원들도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며 “재응시 기회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충청권 의대 본과 4학년 이모(25·여)씨는 “병원 입장에선 당장 내년 인턴 수급 뿐 아니라 그 이후의 레지던트 수급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대리 사과까지 하고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 양해 없이는 국시 추가 시행이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년에 국가시험이 수백개인데 하나만 응시자 요구에 따라 거부했다가 재응시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병원장들의 사과 내용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젊은 의사들의 진료 거부를 병원·교수들이 잘 관리하지 못해 국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데 사과엔 관련 언급이 없다”며 “의료행위에 수반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인데 그런 부분이 해소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