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속 함께 숨쉬는 모든 생명체들에 바치는 헌화(獻畵)

입력 2020-10-08 15:24 수정 2020-10-08 15:37
김품창 작 '어울림의 공간-제주환상', 장지에 아크릴, 2020

김품창 작 '어울림의 공간_제주환상', 장지에 아크릴, 2019

‘가로수가 사라졌다. 48년이나 된 참식나무 가로수 170그루가 모두 전기톱에 잘린 채 나뒹굴고 있었다. 그 길은 초등학생들이 등하교하는 길이고, 때때로 아이들은 낮은 나무둥치에 올라 장난을 치기도 했다. 나무라는 이유로 아무런 저항 없이 하루아침에 전기톱에 잘려 쓰러져 나간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 하게 되었다.

그 후, 언젠가부터 나는 그림을 그릴 때 나무에 눈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에도 숲속에도 눈을 그려 넣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 가치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각각의 생명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를 서로가 존중할 때 비로소 모두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 노트 중)

중견작가 김품창(54)씨가 제주 이주 20주년을 맞아 그간의 작품 활동을 망라하는 ‘김품창 제주 202020’ 전을 개최한다.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추계예술대(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생활해온 그는 서른다섯이던 해 제주 서귀포시 남원에 정착했다.

동화작가인 아내와 딸들과 제주에서 지내온 지난 20년은, 점심을 먹다 우연히 바다 위 돌고래 떼를 만났을 때의 경이로움처럼 설렘의 연속이었다. 대자연이 주는 일상 속 감동은 영감의 에너지로 치환돼 그의 가슴에 켜켜이 쌓여갔다.

다른 한편 제주에서의 생활은 생활고의 연속이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는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급기야 30대 가장이 사춘기 중학생처럼 장롱 밑에 떨어진 동전을 찾아 전력을 다할 때 막다른 삶의 궁지에서 그는 강한 두려움을 느꼈다.

작가로서의 희망을 발견한 건 2011년. 제주입도 10년째 겨울에 연 개인전에서였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10년, 그는 여전히 제주에 살고 있다.

김품창 작가는 제주를 ‘어울림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는 ‘환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제주 자연 속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인간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이 생명체들이 인간만큼 소중한 존재들임을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

전시에선 제주의 풍광에 매료돼 따뜻하고 정감있게 동화 같은 제주를 그리던 정착 초기 작품에서부터 2020년 ‘제주 환상’에 이르기까지 20년간 변화돼 온 그의 작품을 다수 만날 수 있다.

7m가 넘는 판타지 대작과, 365개의 전복 껍데기로 제주의 오름을 지도 형식으로 형상화한 작품, 8m가 넘는 연작 제주 곶자왈의 사계 등 대표작 100여점이 자리한다.

소재 역시 다양해졌다. 제주 이주 초기 바다와 한라산, 해녀, 노을, 밤하늘, 고기잡이배 등을 소재로 그리던 작품 세계는 제주 바다의 다양한 얼굴과 제주의 곶자왈, 제주 설문대할망의 신화에 이르기까지 넓어지고 한층 깊어졌다.

화가 김품창에게 그림은 눈으로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다.

보고 또 보고 가슴에 남겨진 풍경이 작가의 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화면에 옮겨 놓고 싶어 더는 못 견딜 때 비로소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화폭에 옮겨 담는다.

김품창씨는 “이번 전시가 제주의 소중한 환경을 어떻게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인가를 다 함께 고민하고 일깨우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아울러 “코로나 19로 힘든 모든 이들이 잠시나마 동화 속 판타지에 빠져드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두 곳으로 나눠 진행된다. 오는 13일부터 28일까지는 서귀포 예술의 전당에서, 오는 14일부터 22일까지는 이중섭 창작스튜디오 전시실에서 이뤄진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