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맞고살다 남편 죽인 아내… 배심원 결정은 ‘집유’

입력 2020-10-08 04:42 수정 2020-10-08 09:30

40년 넘게 가정폭력에 시달려 온 끝에 남편을 살해한 60대 아내가 국민참여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울산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박주영)는 7일 존손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65·여)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A씨 아들 B씨(41)에게 징역 7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 5월 12일 밤 울산 집에서 남편이자 아버지인 C씨(69)와 다투다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사건 당일 C씨는 술을 마시면서 아내 A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A씨가 요금제 2만5000원에 스마트폰을 구입한 것을 두고 화를 내며 목까지 졸랐다. 신고로 경찰관들이 출동했으나 아내 A씨는 남편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경찰관들을 돌려보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아들 B씨가 집으로 왔고, 아버지 C씨가 어머니에게 계속 욕설을 하고 때리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자 베란다에 있던 둔기를 들고 와 아버지 머리를 내리쳤다.

이에 어머니는 자신이 아들 범행을 안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쓰러진 남편 입에다 염산을 부으려고 했으나 입술이 열리지 않아 실패했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이 놓아둔 둔기로 남편 몸 여러 곳을 수차례 내리쳤고, C씨는 사망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9명 중 7명이 어머니 A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나머지 2명이 징역 5년의 의견을 냈다. 아들 B씨에 대해선 징역 7년이 4명으로 다수 의견을 차지했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죄질이 좋지 못하다”면서도 “A씨가 40여년 동안 심각한 가정폭력을 당하면서도 순종했고 자녀와 손자 양육에 헌신한 점, 이웃들이 한결같이 불행한 가정사를 듣고 선처를 탄원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아들 B씨에 대해선 “아버지를 살해한 것은 패륜적인 범죄”라며 “어머니에 앞서 아버지를 둔기로 때린 것이 이 사건 결과를 일으킨 점, 어머니가 범행하도록 조력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이 불리한 정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으로 고통을 겪어온 것으로 보이는 점, 우발적인 범죄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