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탄성 지른 휘모리장단에 얹은 ‘재즈’ 들어 보실래요?”

입력 2020-10-08 06:00
재즈 드러머 김태현. CJ문화재단 제공


“이번에 들려드릴 곡은 자작곡 ‘Exit(출구)’입니다. 피아노 반주와 베이스 멜로디 기반의 ‘재즈’를 우리 ‘휘모리장단’에 얹은 곡이에요.”

국악 장단 위로 흐르는 재즈라니. 지난달 26일 오후 5시가 되자 CJ문화재단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신비로운 공연 하나가 흐르기 시작했다.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 방식으로 펼쳐진 이 날 공연은 드러머 김태현(20)의 ‘비상(飛上)2’. 김태현은 드럼과 드럼 위·옆에 놓인 꽹과리, 장구를 두드리며 60여분간 세상에 없던 노래들을 펼쳐 보였다. 피아노(강재훈), 색소폰(이선재), 베이스(지재일)과 빚어내는 이채로운 앙상블에 랜선 관객들은 “신기하고 아름답다”는 말을 꼬리를 물고 쏟아냈다.

공연을 기념해 최근 만난 김태현은 “국악은 연주할수록 외국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동양의 멋’을 뿜어낸다. 서양음악의 딱딱 끊어지는 매력이 구르듯이 흘러가는 국악을 만나면 더 아름다워진다”고 힘줘 말했다. 김태현은 올해 초 데뷔 공연 ‘비상1’에 이은 이번 공연으로 음악 활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앞서 김태현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건 ‘드럼 신동’이라는 타이틀을 통해서였다. 2011년 불과 11살의 나이로 tvN ‘코리안 갓 탤런트’에 출연해 출중한 드럼 실력을 뽐냈고 이후 SBS ‘스타킹’에 나가 사물놀이 대부 김덕수와 함께 신명 나는 연기를 펼쳤다. 15세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에 최연소 동시 합격한 김태현은 버클리 음대 최연소 졸업자(만 18세)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 것 같은 국악과 재즈의 하모니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서로 다른 외피를 쓴 두 음악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묘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김태현은 “재즈도 국악도 즉흥연주가 기반인 경우가 많다. 이들 모두 악기와 악기,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울고 웃는 과정에서 탄생한 음악이기에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화성 등 전혀 다른 체계를 가진 음악을 버무리는 과정에서 더 좋은 음악도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6일 선보인 '비상2' 공연의 한 장면. CJ문화재단 제공


재즈와 국악의 조화는 우연처럼 다가와 운명처럼 자리 잡은 것이기도 했다. 김태현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2007년 드럼 스틱을 처음 손에 쥐었다. 당시 다니던 교회 밴드에 드럼 세션이 비어 대신 채를 잡은 게 시작이 됐다. 내로라하는 국내외 음악인의 시선도 자연스레 이 신동을 향했다. KBS 관현악단 수석 드러머 등을 지낸 1세대 드러머 김희현,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 버클리 음대 부학장으로 있던 미국 재즈 드러머 요론 이스라엘 등 거인들의 음악적 성취를 차례로 흡수하며 김태현은 우리 음악과 재즈의 아름다운 앙상블을 꿈꾸게 됐다.

특히 15살의 나이로 캐리어 2개와 배낭 하나를 들고 홀로 향한 미국은 그에게 큰 음악적 자양분이 됐다. 김태현은 “수많은 인종이 모인 버클리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며 “재즈 말고도 라틴 음악 등 전 세계 음악을 그 나라 출신 선생님 육성으로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던 건 음악인으로서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렇다고 김태현의 여정이 마냥 탄탄대로였던 것만은 아니다. 음악 공부를 위해 중학교 입학 포기를 한 김태현은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김태현이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논 기억은 손에 꼽는다. 왠지 모를 상실감에 음악을 멀리할 때도 있었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음악을 고민한 적도 있었다. CJ문화재단이 그런 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2011년부터 CJ음악장학사업으로 해외 음악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한 미래 연주자들을 지원 중인 CJ문화재단은 생활비·장학금을 지원하며 김태현의 음악적 성장을 도왔다. 김태현은 현재도 장학사업 대학원 부문 장학생으로도 선정돼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NEC)에서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재즈 드러머 김태현. CJ문화재단 제공


사실 가장 큰 원동력은 ‘긍정’과 ‘낙관’이었다. 김태현은 “어릴 적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오히려 아버지와 함께 있을 시간이 많아졌다. 드럼을 처음 가르쳐주셨던 것도 사실 아버지였다”면서 “성장하기까지 주변의 많은 도움이 있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과 환경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년 초 입대를 앞둔 그는 마음이 분주하다. 하고 싶은 일들이 부지기수여서다. 현재 충남 서산에 거주 중인 김태현은 서산시가 주관하는 시 공연의 주축을 맡아 시 곳곳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드럼 공연을 정기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 시대를 맞아 온라인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여러 공연도 구상하고 있다. 머지않은 날 “영화 같은 스토리텔링이 담긴 김태현만의 첫 앨범”을 내는 게 현재 가장 이루고픈 목표다.

그렇다면 김태현이 아티스트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는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다”고 했다. “국악을 공부한 지 4~5년이 됐지만 하면 할수록 공부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돼요. 우리 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곡 작업을 해나가고 싶어요. 다채로운 변주 속에서 아름다운 음악들도 함께 빚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