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 만에 왜 지금?…조성길 망명, 野는 ‘국면전환용’ 의심

입력 2020-10-07 17:37 수정 2020-10-07 21:43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대사 대리의 한국행이 15개월 만에 알려진 배경엔 북한으로 보내진 그의 가족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송된 딸 걱정에 한국행을 반대했던 조 전 대사 대리의 아내 이모씨는 일부 언론에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와 함께 탈북 과정을 제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에선 조 전 대사 대리와 북한에 있는 그의 가족 안전, 망명 루트 노출 등을 우려해 그동안 비밀에 부쳐오던 것이 언론 보도로 공개됐다고 설명했다.

국가정보원은 2019년 8월 1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 전 대사 대리에 관해 “이탈리아를 떠났다. 어딘가에서 신변보호 중”이라고 보고했다. 국정원은 바로 그 전달에 조 전 대사 대리가 한국에 들어왔는데도 이 사실을 철저히 숨긴 것이다.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 연합뉴스

여러 차례 한국 망명을 타진했던 조 전 대사 대리가 ‘망명을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확실한 약속을 받고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비밀이 유지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 전 대사 대리가 망명한 그해 2월 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뒤 남북의 냉각기를 고려할 때 북한 외교관의 한국행은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북한으로 송환된 조 전 대사 대리의 미성년 딸의 안전 문제 등을 강조했다. 또한 조 전 대사 대리의 망명 과정이 즉각 알려질 경우 빚어질 수 있는 남북 간 문제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 전 대사 대리의 아내 이씨는 망명 전 머무르던 동유럽 한 국가에서도 딸 걱정에 한국행에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망명 의사를 밝힌 뒤에도 이씨는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부 언론과 접촉한 것으로 정보당국은 파악했다.

하지만 보수 야당은 여권이 악재를 덮기 위해 국면전환용으로 관련 정보를 흘린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의혹에 이어 북한의 공무원 사살 사건,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남편의 미국행 등 여권에 불리한 이슈들이 계속되던 시점에 공교롭게 그의 망명이 알려진 탓이다.

게다가 북한 고위급 탈북민의 한국행은 정보 당국의 확인 없이는 공개되기 어려운 정보다. 조 전 대사 대리는 현재 정보기관의 관리·감독을 받는 모처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한국에 와 있는 북한 외교관 대부분이 공개되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 전 대사 대리의 북한 가족 문제 등으로 극비였던 것이 이번에 공개됐다. 정부 당국이 언론에 의도적으로 공개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조성길과 20년지기”라며 북송된 것으로 알려진 그의 딸에 대한 북한의 처벌 가능성을 우려했다. 태 의원은 “북한은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탈북 외교관들을 배신자, 변절자라고 규정한다”며 “변절자, 배신자 가족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태 의원의 한국 망명은 2016년 8월 통일부 발표로 공개됐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 고위급의 망명을 정부에서 발표했던 상황이 비정상”이라며 “이번에 정부가 조 전 대사 대리의 망명 사실을 의도적으로 흘렸다고 볼 만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보 당국은 이와 관련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