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의회, “美와 국교 회복” 만장일치 통과… 친중 야당도 가세

입력 2020-10-07 16:55 수정 2020-10-07 18:12
지난 6일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입법원에서 열린 본회의 모습. 대만 국회인 입법원은 제1야당인 국민당이 제출한 '미국과의 국교 회복' 결의안을 출석의원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EPA연합뉴스

미‧중 갈등 국면에서 미국과 밀착하고 있는 대만이 이번엔 미국과 국교 회복을 추진하는 의회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여당이 아닌 ‘친중’ 성향의 제1야당 국민당이 제출했다. 중국은 거세게 반발했다.

대만 국회인 입법원은 6일 본회의에서 ‘미국과의 국교 회복’ 결의안을 출석 의원 전원 찬성으로 가결했다고 대만 언론들이 7일 보도했다. 미국과의 재수교를 외교 목표로 세우고 적극 추진하도록 정부에 요청하는 내용이다.

대만 입법원은 또 중국의 명백한 위협이 있을 경우 미국에 지원을 요청한다는 결의안도 통과시켰다. 국민당은 결의안 통과 후 성명을 내 “차이잉원 총통 정부가 미국과 수교를 실현하지 못하면 국민에 큰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 총통·입법원 선거에서 참패한 국민당은 국민 정서를 의식해 친중 노선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총통부는 결의안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둔한 총통부 대변인은 “대만과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라며 “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정부는 오는 10일 국경일(쌍십절)을 앞두고 타이베이에 있는 총통부 건물 외벽에 ‘나는 대만인이다’라는 문구를 투시하는 이벤트도 벌였다. 이는 대만 사람들 다수가 자신을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으로 여기고 있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대만싱크탱크가 지난달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86%가 대만인을 택했다. 중국인이라는 응답은 6.3%에 그쳤다. 1949년 이후 70년 넘게 양안 분단이 이어지면서 이런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6일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총통부 건물 외벽에 '대만의 자랑'을 주제로 한 영상이 투사되고 있다. 행사 하이라이트 부분에선 '나는 대만인이다'라는 문구가 중국어, 영어, 한국어 등으로 동시에 투사됐다. EPA연합뉴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고 대만과 단교했다. 대신 국내법으로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비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미‧중 갈등이 무역, 산업, 외교, 국방 등 전 분야로 확대되면서 대만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미국은 대중 압박 수단으로 대만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고, 대만은 이를 중국에서 벗어나는 기회로 삼고 있다.

특히 최근 미 정부 고위 인사들이 대만을 잇따라 방문하고 중국이 이에 대응해 대만해협에서 무력시위를 벌이면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높아진 상태다.

중국은 거세게 반발했다. 주펑롄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으로 양안은 하나의 중국에 속한다는 사실은 바뀔 수 없는 역사이자 법리적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만 독립, 두 개의 중국,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이라는 모든 분열 행위에 반대한다”며 “양안의 일은 집안일로 어떠한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은 2018년 미 하원에 제출된 결의안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당시 대중 강경파인 다나 로라베이커 의원은 미 역대 정부가 유지해온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폐기할 것을 촉구하면서 ‘일중일대’(하나의 중국과 하나의 대만)로 고칠 것을 제안했다. 미 하원에선 대만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외교 관계를 재개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이 여러 번 제출됐지만 채택된 적은 없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비난에 가세했다. 글로벌타임스는 결의안을 낸 대만 국민당을 향해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천박해졌다”며 “그들은 정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더 이상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며 “앞으로 나아갈 길은 전쟁에 완벽하게 대비하고 대만 분리주의 세력을 처벌하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