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단지 현재 시세는 8억3000만~9억
인근 공인중개사 “매물이 없어 부르는 게 값”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 개정 후폭풍으로 빚어진 전국적인 전세 파동 앞에 경제정책 수장인 경제부총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내년 1월 현재 사는 서울 마포구 전셋집의 계약 만료를 앞두고 새 전셋집을 알아봐야 할 처지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여당이 야심 차게 추진해온 임대차법 개정의 유탄을 경제수장이 직접 맞게 된 격이다.
지난 3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관보에 따르면 홍 부총리 가족은 서울 마포구 염리동 마포자이3차 전용면적 84.86㎡(25평)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홍 부총리 가족은 지난해 초부터 홍 부총리 아내 명의로 보증금 6억3000만원에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앞서 홍 부총리는 ‘다주택’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 8월 초 경기도 의왕 아파트를 팔았다. 현재 사는 마포 아파트 전세 계약 만료 넉 달을 앞두고 최근 집주인 측이 홍 부총리 가족에게 실거주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개정 임대차법에 따르면 집주인 및 직계 존속이 실거주할 경우 임차인은 집을 비워줘야 한다.
새로운 전셋집을 알아봐야 할 처지가 됐지만, 상황이 썩 녹록지 않다. 현재 홍 부총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 전세가는 8억3000만~9억원 사이로 껑충 뛰었다. 홍 부총리가 사는 아파트는 1000세대 가까이 되는 대단지이지만 7일 현재 전세 매물은 고작 3개뿐이다.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일부 매물이 6억500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지만, 매물이 씨가 마르면서 호가가 치솟은 상황이다.
홍 부총리 가족이 집주인에게 돌려받을 전세보증금으로는 인근에서 갈 수 있는 전셋집이 거의 없다. 홍 부총리가 사는 마포자이3차 인근 단지별로도 전세 매물은 고작 1~2개 수준이거나 전셋값이 턱없이 높은 실정이다. 염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임대차법 이후로 계약 갱신을 할 수 있으니 전세 물건이 안 나온다. 이 일대에서 7억원 이하 전세 매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전세를 찾는 사람은 여전히 많은데 매물이 없으니까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세 매물이 줄면서 거래 감소세도 뚜렷하다. 서울부동산광장에 따르면 마포구의 전세 거래는 지난 6~7월만 해도 각각 462건, 416건이었지만, 임대차법 시행 이후인 8~9월에는 327건, 253건으로 계속 줄었다. 서울의 다른 지역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보통 8월 하순부터 2학기 시작 전에 전세 수요가 많아지는데 올해는 임대차법 영향으로 거래가 줄어 동료 공인중개사들도 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전세 파동이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감정원이 발표한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를 보면 지난달 월간 주택종합 전셋값 상승 폭은 수도권(0.65%)뿐만 아니라 지방(0.41%)도 덩달아 증가했다. 특히 지난달 5.69% 치솟은 세종시에서도 전세 파동의 여파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세종시에 사는 40대 직장인 이모씨는 최근 보증금 3억1000만원짜리 전세가 나오자 부랴부랴 부동산으로 달려가 바로 계약을 맺었다. 이씨는 현재 같은 동네에 있는 아파트에서 보증금 2억원에 전세를 살고 있다. 그러나 이씨는 “이 집이라도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씨 역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직격타를 맞았다.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되자 기존 집주인이 집을 팔았고, 새 집주인이 전세 계약 만료 이후 실거주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매물은 없었고, 나오는 가격은 억 단위로 뛰었다. 이씨는 “초등학생 저학년인 아이들을 생각하면 멀리 이사 갈 수도 없어서 보증금 부담을 지더라도 서둘러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며 “오죽하면 우리 부부는 물론 장모님 적금까지 깨서 보증금을 대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세종시의 한 공인중개사는 “세종에 사는 세입자 상당수는 전셋값이 오르기 전에 싼 가격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더더욱 요즘 같은 전셋값 폭등 상황에서 안 나가려고 할 것”이라며 “집주인 실거주 때문에 불가피하게 나가는 사람들만 불쌍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도 새로 방을 구하려고 온 공무원들이 있었는데 매물이 없고 비싸니 결국 세종시 밖으로 나가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세종=이종선 신재희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