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아이의 행동과 마음

입력 2020-10-07 13:52

아이들이 어떤 행동, 어떤 증상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의 행동이나 증상에만 관심을 갖고 교정하려 하기 쉽다. 아이들이 ‘폭력, 징징거림, 폭식, 거식, 거짓말만 도벽 등의 문제 행동의 이면에는 수치심, 무력감, 거절에 두려움, 분노감 등의 감정들이 숨어 있다.

11살 남학생이 N은 작은 일에도 화를 참지 못하고 친구들과 자주 싸움을 한다. 처음엔 짜증을 내며 말싸움하는 정도였지만 차츰 강도가 심해지면서 몸싸움을 하기 일쑤였다. 최근에는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져 학교에서나 주변에서 기피 대상 1호가 되었다.

N은 호리호리한 몸매에 체격도 작은 편으로 힘이 세어 보이거나 몸싸움을 잘할 거 같이 보이진 않았다. 상담을 하다 보니 남자 아이들이 자기를 만만히 보고 ‘약하다고 생각’해서 자주 건드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려서 아빠는 자신이 울면 ‘그만 좀 울어라, 계집애 같이 약해빠졌다’라고 말하며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심지어 매를 맞기도 했다. 그러다 울음을 그치면 아빠는 그걸 칭찬해 주셨다. 이런 일이 자주 있어 기억에 생생하다고 했다.

치료자 : 아버지가 너에게 ‘계집애 같이 약해 빠졌다’고 화를 냈을 때 기분이 어땠니?
N : 그런 말을 들으면 속상했어요. 아빠가 나를 싫어하는 구나..... 슬프고, 창피하고, 아빠가 화를 내니 무섭기도 하고.....
치료자 : 그런 느낌이 들고 아빠가 너를 싫어한다고 느꼈으면 정말 힘들었겠구나. 그래서 어떻게 했어?
N : 울음을 그쳤어요.
치료자 : 아버지의 반응을 보고 스스로 울지 않게 됐구나. 울면 아버지가 너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나오는 울음을 어떻게 억지로 멈출 수 있었을까?
N : 전 할 수 있었어요. 일부러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고 슬프거나 무서운 마음을 못 느끼게 만들었어요. 아무 느낌이 없게 만든 거죠. 그러니까 울음이 멈추던 걸요...... 그러니까 아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약하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치료자 : 마음이 아픈 것, 슬프고, 무서운 마음을 스스로 못 느끼게 해서 울음을 조절할 수 있었다고....그렇게 감정을 없애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나오는 울음을 조절하는 것 도. 넌 남자답고 약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서 울지 않는 것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했나 보구나. 울면 아빠가 너를 싫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지? 너도 너의 우는 모습이 싫었니?
소면 : 네.
치료자 : 음 남자답지 못하고 약해 보이는 게 창피하고 아빠가 화를 내시니 너를 싫어하는 것 같아 두려움 마음이 들어서?
N: 네, 맞아요.
치료자 :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너의 모습을 보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모르게 됐구나.
N : 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생각이 거의 안 들어요. 누구라도 저에게 ‘자기를 무서워하거나 겁을 낸다’고 생각하면 너무 너무 화가 나요..
치료자 : 그래서 네 자신의 그런 면을 다른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도 찾아냈니?
N : 네, 그럼요. 나를 무시하고 약하게 보는 애들이 있으면 너무 화가 나서 싸우게 돼요. 그래야 저를 강하고 남자답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치료자 : 그런 싸움을 통해 너는 네가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구나.

이런 식으로 아이의 마음을 따라가 보자. 하지만 아이의 행동과 이면의 감정이 공식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아이의 마음에 대해 미리 단정하지 말고 궁금증을 갖고 질문해야 비로소 아이는 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아는 것은 공감의 기초가 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