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대기업 ‘가습기 살균필터’…유해성 검증 없이 판매

입력 2020-10-07 05:21 수정 2020-10-07 10:06
6일 오전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업의 피해지원 적정성 중간조사 결과보고 기자회견에서 황전원 특조위 지원소위원장이 살균부품이 장착된 가습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의 가습기 장착 살균부품(필터)이 정부의 관리대상인 ‘가습기살균제’에 해당하는데도 현재까지 유해성 검증 없이 판매됐다는 소식이 충격을 주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엔 ‘가습기’가 오르내리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6일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필터를 제조한 기업들이 피해구제분담금 부과 대상인지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기업의 피해지원 적정성 조사’ 중간 결과 발표를 하며 이같이 지적했다. 인체에 해를 끼치는 가습기살균제에는 물에 희석해 사용하는 생활제품뿐만 아니라 가습기 내에 부착해 사용하는 살균부품 역시 포함되지만 지금껏 정부나 기업 차원의 판매 중지나 수거, 독성실험 등이 없었다는 게 사참위의 지적이다.

사참위가 공개한 살균제품을 살펴보면 삼성전자는 최소 76종의 모델을 2006년부터 2011년까지, LG전자는 최소 56종의 모델을 2003년부터 판매해 왔다. SK매직(구 동양매직), 일렉트로룩스의 살균필터 장착 가습기는 현재 사참위가 판매 기간과 기종을 확인하는 조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2012년 살균부품이 의약외품으로 지정되자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가습기 판매를 중단했지만 살균부품은 지금도 판매하고 있다. 이들 살균부품은 각 회사 서비스센터뿐 아니라 옥션, 11번가, G마켓 등 다수의 유통채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습기에 장착하는 살균필터는 2011년 12월부터 ‘보건복지부 의약외품 범위지정 고시’에서 가습기살균제로 인정됐고 이듬해 기업들의 의약외품 제외 요청에도 정부는 계속 의약외품으로 판단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당시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를 포함한 전문가와 공무원, 기업인사 등과 ‘가습기 내 물속 미생물을 살균(항균)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무기성분 제품(살균부품)’이 의약외품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논의한 결과 살균부품 역시 가습기살균제인 의약외품으로 봐야 하며 해당 제품을 제조‧판매하기 위해서는 의약외품으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결론 냈었다.

그러나 살균부품의 재고를 처리해야 했던 기업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단, 가습기 설계요소로서 가습기 제조자에 의해 장착되고 제공된 제품은 제외한다’는 예외규정을 추가해 달라고 건의했었다. 이에 식약청은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로부터 ‘해당 제품은 의약외품 범위지정 고시에 정하고 있는 사용목적과 방식에 부합하므로 이 제품을 의약외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사참위는 ‘무허가 의약외품’이 광고‧판매되지 않도록 주의를 요청하니 적극 협조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기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이런 가습기 살균필터를 가습기살균제라고 인정하고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아 15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 지 9년이 지났지만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 지금도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의약외품 지정 업무가 보건복지부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 다시 환경부로 이관되는 동안 허가나 승인을 받은 가습기 살균필터는 없었기 때문에 현재 판매되는 살균필터들은 모두 무승인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모두 살균필터의 인체흡입 독성 실험을 하지 않았는데 살균제와 다른 원리로 작용하고 성분도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참위는 “살균필터 흡입 독성 실험과 성분 분석이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정부 차원의 유해성 판단 근거가 없다”며 “자칫 국민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다만 “현재까지 가습기 살균필터로 인해 피해 사례가 보고된 바는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참위는 “우리가 걱정하는 건 희석해 쓰는 것만 가습기살균제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피해가 있더라도 피해자들이 모를 것”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살균 부품도 피해 발생 소지를 완전히 부정할 순 없다”고 했다.

사참위는 가습기살균제에 해당하는 살균부품이 지금까지 방치된 과정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필요하면 법적 조치도 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참위는 이번 발표를 계기로 피해신고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운영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종합지원센터(1833-9085)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