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인생 첫 드라마… 여자들 이야기 더 재미있어”

입력 2020-10-06 18:10
'보건교사 안은영'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젤리의 공격을 받은 학생들의 눈빛이 흐릿해지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면 전사의 운명을 타고난 안은영(정유미)은 플라스틱 칼을 집어 든다. 은영은 이런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보는 세상은 비밀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남을 돕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XX” 시작부터 파격적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 25일 전 세계 동시 공개됐다.

20년 간 영화를 만들다 드라마에 첫 도전한 이경미 감독은 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은 많지 않았다”며 “과제이자 목표는 1화를 본 후 2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며 “말했다. 그는 ‘여성 히어로물’을 과감히 앞세우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연출한 이경미 감독. 넷플릭스 제공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고등학교 보건교사 은영이 욕망의 잔여물인 젤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해 학생들을 구하는 코믹 히어로물이다. 작품 속 세계관에서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은 젤리를 만들고, 오염된 젤리에 현혹된 이는 불행에 빠진다. 이 작품은 공개 직후부터 넷플릭스 상위권에 안착하면서 전 세계에 K드라마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은영은 한국 콘텐츠 속 기존 여성 캐릭터와는 다르지만, 여느 히어로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는 인물도 아니다. 누군가를 구해야 하는 운명을 귀찮아하지만 막상 오염된 젤리가 나타나면 무지개칼과 비비탄총을 망설임 없이 꺼내 든다. 이 감독은 “완성되지 않은 여전사가 비로소 본인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여기에 정 작가가 창조했던 ‘선한 어른들이 아무 대가 없이 학생들을 지키는 이야기’라는 넓은 주제가 더해지니 의미는 깊어졌다.

'보건교사 안은영'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이 감독의 전작들처럼 ‘보건교사 안은영’도 여성이 원톱 주인공이다. 그는 “여자들 이야기가 재미있지 않나”라며 “여성을 내세운 작품은 많지 않았고, 특히 여성 히어로물은 더 없었다. 이번 작품이 그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은영은 용감함과 당돌함을 고루 지닌 인물로, 한국 콘텐츠에서는 드물었던 강력한 여성 캐릭터다. 주체적인 은영은 작품 속 여성 서사의 전환점이 될 예정이다.

“이번 작품은 여성 히어로물의 발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은영은 지극히 평범한 현실의 여성이지만, 한 편으로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상상 속 인물이죠. 현실과 초현실이라는 인생의 경계에서 은영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초현실 세계 속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어요. 판타지 요소들이 은영의 현실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 미완의 인간이었던 은영이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기를 표현하고자 했죠.”

영화감독이었던 그가 긴 호흡의 시리즈를 만들어내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은 1화를 본 후 2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게 과제이면서 목표였다. “드라마를 처음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드라마를 즐겨보던 시청자들은 제 화법이 낯설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영화와 드라마는 정보를 주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다음 내용에 대한 기대감을 주려고 노력했죠.”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