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즌 개막에 앞서 ‘메시 사가’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스페인 라리가 명문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가 흔들릴 것이란 예상과 달리 물오른 경기력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전 감독들이 고집해온 바르사의 전통적인 색깔에 집착하지 않고 보유한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최상의 전력을 끌어내고 있다는 평가다.
바르사는 6일(현지시간) 현재 기준으로 라리가 3경기에서 8득점 1실점을 기록한 상태다. 대승을 거둔 첫 2경기와 달리 가장 최근인 4일 세비야전에서 무승부를 거뒀지만 경기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가 다수다. 임대 복귀한 ‘미운 우리 새끼’ 필리페 쿠티뉴, 프랜차이즈 유망주 안수 파티가 함께 활약하고 있고 프랭키 더용 역시 후방에서 제 기량을 펼치고 있다.
바르사의 변화는 수치에서부터 드러난다. 후스코어드닷컴 통계에 따르면 바르사는 이번 시즌 리그 3경기 모두 점유율이 60%를 넘지 않았다. 지난 시즌 바르사의 전통적인 ‘점유율 축구’대로 시즌 전체 경기당 점유율이 63.2%, 리그 1위였던 점을 생각하면 유의미한 변화다. 패스성공률도 86~89%를 오갔지만 지난 시즌 역시 리그 1위였던 88.9%에 비하면 다소 내려왔다.
다른 지표에서도 바르사의 변화는 일관성 있게 드러난다. 전체 슈팅 대비 유효슈팅 비율은 상승했고, 페널티박스 안 슈팅 비율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당 드리블 횟수도 지난 시즌 13.8개였던 게 올 시즌은 11.3개로 줄었다. 아직 시즌 초반인 만큼 쌓인 데이터가 적어 섣불리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여태 드러난 것만 봤을 때 전보다 효율적인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의아한 결과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선수단에서 보태진 인원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임대 복귀한 쿠티뉴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축 선수였던 루이스 수아레스와 이반 라키티치, 아스트로 비달이 한 번에 팀을 떠나면서 전력 누수를 예상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일간 마르카는 “(전임 감독) 에르네스토 발베르데나 키케 세티엔의 문제가 아니라 선수단의 전성기가 지난 게 문제라는 여론이 많았지만, 결국 감독의 문제였다는 걸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로날드 쿠만 신임감독은 기존에 바르사가 써온 433 전형이 아닌 자신이 즐겨 쓰던 4231을 적용하고 있다. 바르셀로나가 2000년대 후반 펩 과르디올라 감독 시절부터 433을 주축으로 한 ‘지배하는 축구’로 명성을 떨쳐온 기억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변화다.
포지션 면에서 따져보면 쿠만 감독은 지난 시즌 무리하게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되던 더용을 3선으로 내리고, 바르사에 머무를 당시 측면에서 방황하던 쿠티뉴를 최전방 리오넬 메시 아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고정시켰다. 쿠만 감독은 앞서 지난달 12일 프리 시즌 첫 경기 뒤 “내가 지휘할 바르사는 지난 몇 년과 다르다. 다소 수비적으로 비칠 수 있다”고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분명하게 눈에 띄는 전술 변화가 있다”면서 “지금의 4231은 바르사가 여태 추구해온 전술이 아니다. 전형 자체가 좀 더 실리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쿠만 감독은 더 실용적임과 동시에 현재 가지고 있는 선수들을 활용하기에 적합한 포진을 택한 것”이라면서 “사실 차비 에르난데스, 안드레 이니에스타 등이 떠난 이후, 또 그 뒤에도 최소한 ‘MSN’ 트리오 중 네이마르가 떠난 시기부터 시작됐어야 하는 변화였다”라고 평했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먼저 팀의 근간인 메시의 활약이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평가다. 한 위원은 “나이가 많다는 걸 고려해도 지금이 메시 최상의 컨디션은 아닌 듯하다”면서 “메시 의존도를 줄여야 하는 건 맞고 그게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메시 본연의 위력이 나와줘야 바르사가 잘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시는 후방으로 내려가서 플레이메이킹에 관여하던 과거와 달리 쿠만 감독 체제에서 4231의 전방 공격수로 출전해 3경기 1골을 기록하고 있다.
오른쪽 측면에서 비교적 저조한 활약 중인 앙투안 그리즈만의 활용 역시 남은 숙제 중 하나다. 파티와 쿠티뉴가 휘젓는 왼쪽 측면에 비해 파괴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한 위원은 “조금 경기를 더 치러봐야 알겠지만 만일 그리즈만이 오른쪽 측면에 제대로 적응을 못하면 냉정하게 말해 겨울 이적시장에서 매각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면서 “다음 시즌 메시가 떠난다면 그리즈만 최적의 자리인 중앙으로 데려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쿠만 감독이 주도하는 현재의 변화가 방향성을 가지고 꾸준하게 지속될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주제프 바르토메우 회장이 현재 불신임 투표 절차에 오른 상태에서 연임은커녕 기존 임기인 내년 3월까지도 자리를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새로 회장 자리에 오를 인물이 쿠만 감독을 지지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바르사는 다시 한번 격동기를 맞을 수도 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