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은 도서정가제가 완화될 경우 “태어날 수 있는 책들의 죽음을 우리도 모르게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강을 비롯한 국내 작가 10명 중 7명은 현행 도서정가제가 유지되거나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강은 6일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열린 ‘도서정가제 작가 토크’에서 “(도서정가제가 완화될 경우) 짧게 보면 재고를 쌓아놓은 큰 플랫폼들이 재고를 처리하고, 이를 싼 가격에 구입해 몇 십만 원의 이익을 볼 수 있다”며 “하지만 그런 잔치는 금방 지나간다”고 말했다. 또 “도서정가제가 개악이 될 경우 이익을 보거나 뭔가를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라며 “자본이나 상업성 너머의 것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서정가제가 자발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출판 생태계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고 보고 이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한강은 “어떻게 보면 이 정부는 시민의 자발성에 빚을 지고 있는 정부”라며 “시민의 자발성을 힘세게 밀고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씨앗들이 지금 막 자라서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다”라고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함께 나온 시인 박준도 “자발적으로 마련된 분위기에 누가 되지 않게 독자와 작가를 위한 정책이 더 많이 생겨나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이날 행사에선 국내 작가들의 도서정가제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작가 대다수는 현행 도서정가제를 유지하거나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국출판인회의가 한국작가회의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69.9%의 작가가 현 제도를 유지(39.7%)하거나 강화(30.2%)해야 한다고 답했다.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30% 정도였다.
도서정가제가 작가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선 47.1%가 ‘도움이 된다’고 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33%였다. ‘도움이 되는 분야’(복수응답)로는 ‘가격경쟁 완화’(62.9%)를 비롯해 ‘작가의 권익 신장’(58.5%) ‘동네서점의 활성화’(54.8%) ‘신간의 증가’(31.7%) 순이었다. 조사는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18~22일 이뤄졌다. 3500명의 작가 중 1135명이 답했다. 신뢰도 95%에 표본오차는 ±2.9% 수준이다.
이밖에 출판인회의는 다른 작가들의 도서정가제에 대한 목소리도 함께 소개했다. 소설가 정세랑은 “생산자들에 대한 착취를 막기 위해 도서정가제를 지지한다”며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온당한 대가를 받으며 건강을 해치지 않는 속도로 일하려면, 출판계를 움직이는 방식이 덤핑 형태의 가격경쟁이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소설가 김탁환은 “책에 필요한 값은 싼 값이나 비싼 값이 아니라 제값이다”며 “제값은 쓰고 만들고 나누고 읽는 자 모두를 정당하고 행복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