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른바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추진 속도를 늦춰달라는 대기업 사장단의 요청을 거부했다. 이 대표는 “기업계 우려를 듣고 보완할 것이 있으면 보완하겠다”면서도 “다만 이것을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경제 3법은 기업의 건강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 기업을 골탕 먹이기 위한 법안이 아니다”며 처리 가속화를 공언했다.
이 대표는 6일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을 방문해 대기업 사장단과 간담회를 개최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모두발언에서부터 이들 발언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손 회장은 감사위원 분리선임, 다중소송제 등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기업 경영권 행사에 직접적 타격을 주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해서도 (수위가) 높다”고 비판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는 합리적 수준의 경쟁력 확보를 저해한다”고, 금융그룹 감독법안에 대해서는 “이중 규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인사말에서 “외국 헤지펀드가 한국 기업을 노리도록 틈을 열어주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재계 우려에 화답했다.
이 대표는 그러나 비공개 회의에 들어서자 “(손 회장의) 발언만 들어보면 (민주당이) 혼나러 온 거 같다”며 분위기를 일신했다. 한 참석자는 “너무 딱딱한 분위기여서 좀 바꿔보고자 던진 농담성 발언”이라고 했지만 손 회장의 발언에 불쾌감을 표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를 호소하며 “여당이 기업이 경제 활동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이 대표는 “우리 정치인들은 말을 길게 하는데 경제인들은 말을 모두 참 짧게 하신다”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도 했지만, 이견은 좁히지 못했다.
손 회장은 간담회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11월에 가서 3법을 처리한다는데 조금 더 있어봐야 한다. 저희도 열심히 국회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시기니까 중요한 결정(3법 처리)은 조금 미루고 코로나19 여파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며 “논의에 진척이 있으리라 본다. 우리는 속도와 강도를 좀 줄이자는 의미로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그러나 ‘오해를 풀었다’는 입장이다. 3법 취지를 설명하고 기업들의 이해를 구하는데 중점을 뒀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서로 간에 오해가 있다면 풀어야하고, 머지않은 시기에 구체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국회 내 3법 처리 원칙이 유지되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며 양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민주연구원이 기업계와 소통토록 했는데, 이 역시 공개적 토론회를 통한 의견 수렴에 나서겠다는 것이어서 ‘내밀한’ 대화를 원하는 기업 바람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미 민주연구원에서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며 “앞으로 삼성경제연구소 등 민간 연구소와 공동 작업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방문에 기대감을 표했던 재계 역시 현격한 입장차에 실망감을 숨기지 못했다. 간담회에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장동현 SK 사장,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 오성엽 롯데지주 사장, 김창범 한화솔루션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강준구 권민지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