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를 보면서 연주가 더 절실해졌어요. 음악은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에요. 그렇기에 꼭 살아있어야 하죠.”
50여년을 음악에 바쳐온 피아니스트 백건우(74) 선생은 차분하고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6일 슈만 전국 투어를 앞두고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 자리에서였다. 백건우는 “음악은 단순히 아름다운 소리가 아니고 우리 인생을 아름답고, 또 옳게 채워주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백건우와 슈만’은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의 이 같은 고민과 절실함이 배어있는 자리다. 지난달 17일 도이치그라모폰(DG) 슈만 신보를 기념하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백건우는 발랄한 ‘아베크 변주곡’부터 죽음 앞의 고독을 그린 ‘유령 변주곡’까지 슈만의 낭만적이면서도 기구했던 삶을 전한다. 백건우는 “작곡가 슈만을 세상에 알린 곡으로 시작해 인생의 마지막 곡으로 끝을 맺는다”며 “청중들을 (슈만의 삶으로) 인도하기를 바라며 짠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고 지난해 쇼팽 야상곡 전곡 음반을 낸 백건우는 그보다 앞서 메시앙, 리스트, 슈베르트, 스크랴빈, 라흐마니노프 등 음악가를 탐구해온 ‘구도자(求道者)’로 불린다. 연주에 앞서 작곡가를 이해하려 각종 문헌·서적을 탐독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이번 앨범을 녹음할 때도 피아노 선정은 물론 곡마다 최선의 음색을 찾기 위해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그런 백건우에게도 슈만은 쉽지 않은 작곡가였다. 오른손을 다쳐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어야 했던 슈만은 당시 작곡과 평론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생을 정신병원에서 마감한 슈만은 아홉 살이나 어렸던 천재 피아니스트 클라라와 결혼하기까지도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슈만이 고통 속에서도 타고난 음악성으로 헤아릴 수 없는 명곡들을 남겼다는 백건우는 “그가 불편하게 느껴졌던 젊을 때와 달리 이제야 그의 삶이 조금씩 이해된다. 어떤 심경으로 이 곡을 썼을지 많이 연구했다”며 “나도 이번 기회를 통해 슈만을 재발견했다”고 말했다. 10여년간 음반 프로듀싱을 맡아온 톤마이스터 최진은 ‘유령 변주곡’ 등 백건우의 연주를 들으며 스튜디오에서 한동안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이번 앨범은 슈만의 내성적인 면을 담은 ‘오이제비우스’와 공격적인 자아를 상징하는 ‘플로레스탄’ 두 장의 CD로 구성됐다.
지난해 동반자이자 배우 윤정희의 알츠하이머 투병 소식을 밝힌 백건우는 현재 거주 중인 파리를 오가며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많은 제약도 따른다. 지난 5월 취소된 당시 독일 본 베토벤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차 한국에 왔던 그는 이번 리사이틀을 위해서 두 번째 자가격리를 거쳤다. 잇따른 자가격리가 불편하진 않았냐는 물음에 백건우는 ‘구도자’란 별명에 어울리는 답을 내놨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연습한다는 게 한편으로는 행복했어요. 앨범도 마음에 끌리는 작곡가가 있으면 꼭 해야 하죠. 슈만, 다음은 누가 될까요.”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