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만 ‘씬파일러’ 시장 잡아라…금융권 불붙었다

입력 2020-10-06 17:07 수정 2020-10-06 17:26

올해 대학을 졸업한 A씨는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전세자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알아보니 신용점수가 685점이었다. 2금융권(저축은행)에서 연 15% 금리로 2000만원을 빌릴 수 있는데, 이자 부담액만 연간 300만원이다. 그런데 A씨의 신용평가 항목에 ‘국민연금 성실납부 이력’을 반영하면 대출 문턱이 좀 더 나아진다. 신용점수가 720점으로 오르고 1금융권(시중은행)에서 6%의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연간 이자는 120만원으로 줄어든다.

신용평가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가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 국민연금공단과 함께 국민연금 납부 정보를 활용해 만든 새로운 신용평가모형을 적용한 결과다. 이달부터 일부 금융사들이 적용하기 시작한 모델로 A씨 같은 사회초년병이나 학생, 가정주부 등 이른바 ‘씬파일러(Thin Filer·금융이력부족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씬파일러는 금융 정보가 부족해 신용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부류로 낮은 신용등급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신용등급이 낮으면 은행권에서 돈을 빌리기가 어렵거나 높은 금리로 빌릴 수밖에 없다.

6일 신용평가사인 나이스(NICE) 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씬파일러로 분류된 이들은 1271만5748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신용등급(1~10등급) 대상자 가운데 27%다. 금융업계는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씬파일러 시장 선점에 팔을 걷어붙였다. 특히 빅데이터를 활용한 ‘마이데이터’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기존 금융사들과 빅테크들 간 경쟁이 치열하다.

대표적 빅테크인 네이버 계열의 네이버파이낸셜은 최근 ‘대안신용평가시스템(ACSS)’을 구축했다. 이용자 리뷰나 단골고객 등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용평가 모형이다. 중소기업·소상공인과 사회초년생 등을 위한 서비스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내년 6월 제3 인터넷은행인 ‘토스뱅크’ 출범을 준비 중인 비바리퍼블리카는 아예 “기존 은행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중신용자·소상공인을 위한 ‘씬파일러 맞춤형 서비스’를 지향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기존의 시중 은행과 카드사들도 분주하다. 자체적으로 또는 제휴를 통해 대안 신용평가 모델을 만들거나 관련 대출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자체 개발한 신용평가 모형을 적용한 ‘NH씬파일러 대출’을 최근 출시했다. 통신사 정보 등 비금융데이터를 통해 신용·소득이 낮아도 상환 능력이 있는 고객을 선별해낸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금융 거래 이력 부족 등의 사유로 은행권 대출이 어려웠던 고객을 대상으로 ‘비상금 대출’ 상품을 내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안신용평가로 씬파일러들의 대출 환경이 한층 개선되는 동시에 금융사들도 신규고객 확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면서 “하지만 업계 간 지나친 경쟁이 불필요한 대출과 연체 가능성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