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하자마자…트럼프, 전격 ‘집단면역’ 카드 만지작

입력 2020-10-06 15:5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를 받던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월터 리드 병원을 퇴원해 백악관으로 돌아온 뒤 블루룸의 트루먼 발코니에 나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양복 상의 주머니에 넣고 있다. AP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됐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흘 만에 퇴원한 가운데 미 행정부가 방역 대안으로 ‘집단면역’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한 우려가 채 가시기도 전에 집단항체 형성이나 확산 저지 등 효과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5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 매체 더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의학 고문인 스콧 애틀러스와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집단면역론을 지지하는 의학계 인사들을 초청해 회의를 했다. 참석한 인사는 마틴 컬도프 하버드대 교수, 수네트라 굽타 옥스퍼드대 교수 등 3명으로 모두 전염병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회의에서 젊은층과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바이러스가 통제 없이 퍼지도록 허용하되 고령층이나 고위험군은 보호하는 방안을 소개했다. 충분한 인원이 면역을 형성해 확산세를 잡는 동시에 경제에 타격을 주는 봉쇄도 피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컬도프 교수는 “우리는 아주 좋은 논의를 했다”며 “장관은 많은 질문을 던졌고, 우리는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우리측 사례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집단면역은 특정 지역의 주민 대다수가 바이러스에 노출된 뒤 면역력을 갖게 돼 쉽게 확산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항체를 가진 사람이 다수가 되면 바이러스는 차단되거나 확산이 느려져 면역력이 없는 소수까지 보호할 수 있다. 전체의 60% 이상이 항체를 보유하면 통상 집단면역에 성공한 것으로 본다.

그간 스웨덴과 인도 등 집단면역이 추진된 것으로 알려진 나라들은 쓴맛을 봤다. 특히 스웨덴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엄격한 봉쇄조치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집단면역을 추진했지만, 수도 스톡홀름 시민들의 항체 보유율은 저조한 수준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 조사에 따르면 최근 스톡홀름의 항체 형성률은 7.3%다. 인도 뭄바이도 현지 당국이 지난 8월 중·하순 슬럼가 주민 53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한 달 전보다 12% 떨어진 45%의 항체 형성률을 기록했다. 집단면역이 아직 멀었다는 증거다.

마크 메도스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이 지난 4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소재 월터 리드 군 병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치의인 숀 콘리가 트럼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상태에 관해 언론 브리핑을 하는 동안 인근 벤치에 앉아 이마를 손으로 만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로 입원 중인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월터 리드 군 병원에서 5일(현지시간) 숀 콘리 대통령 주치의가 기자회견을 열어 트럼프의 건강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더힐은 아직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제 없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도록 놔두면 불필요한 사망, 질병, 입원 등이 생길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며 그런데도 지난 8월 애틀러스 고문이 합류하면서부터 백악관에서는 집단면역론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애틀러스 고문은 전염병 전문가가 아니지만 폭스뉴스 등에서 집단면역론을 옹호해오다 백악관에 입성했다.

애틀러스 고문은 더힐에 보낸 이메일에서 이날 회의에 참석한 교수들이 주도하는 집단면역 서명운동에 자신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취약층을 선별적으로 보호하고, 학교 및 사회 활동을 재개한다는 이들의 구상은 대통령의 정책 및 내가 해온 조언과 들어맞는다”고 덧붙였다. 집단면역 개념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언급하기 시작했고, 보수 진영이나 봉쇄 대신 경제 활성화를 지지하는 이들 사이에서 자주 등장한다고 더힐은 전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월터 리드 병원 건물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퇴원한 트럼프는 전용헬기 마린원을 타고 백악관으로 복귀했다. AP 연합뉴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