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단 한 발도 없었다” 전두환의 4시간짜리 항변

입력 2020-10-06 09:50 수정 2020-10-06 10:27
연합뉴스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전두환(89)씨 측이 결심재판서 무려 4시간에 걸친 최후 변론으로 무죄를 주장했다. 방청석 곳곳에서는 장탄식이 이어졌고 ‘광주사태’라는 표현이 나올 때는 거친 항의가 나오기도 했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 심리로 5일 열린 결심공판은 ‘전두환 없는 전두환 재판’으로 이뤄졌다. 전씨는 이날도 법원의 불출석 허가를 받고 출석하지 않았다. 검찰은 전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하며 “역사적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나 역사 상대주의, 실증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함으로써 이를 디딤돌 삼아 우리 사회가 부정의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의 구형과 의견서 낭독은 재판 시작 30분 만에 마무리됐다. 그러나 전씨 측 법률 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4시간 동안이나 전씨의 무죄를 항변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광주 상공에서 단 한 발의 총알도 발사된 적 없다. 그것이 역사적 진실”이라며 “헬기 사격설은 비이성적 사회가 만들어낸 허구”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군 문서에 헬기 사격 지시·명령이 없는 점’ ‘헬기 사격을 거부했다는 당시 군 수뇌부들의 진술’ 등을 들었다. 그러면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10만여명의 광주시민이 그 광경을 봤을 테고 사건의 증거는 차고 넘쳐야 한다”며 “그러나 광주지검에서 수사한 내용은 객관적 증거를 찾을 수 없고 하나같이 추측에 추측을 더한 삼류소설”이라고 맞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 명예훼손 결심 공판이 열린 5일 광주 동구 광주지법 앞에서 전씨 측의 변호인인 정주교 변호사가 재판을 앞두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 변호사의 변론이 3시간가량 이어지자 검찰 측은 재판장에 휴정을 요청했다. 이를 받아들인 재판장은 휴정 직전 전씨 측에 “중요한 내용 위주로 변론해 달라”는 취지로 경고했다. 이후 재판이 오후 5시39분부터 속행됐지만 정 변호사의 무죄 주장은 반복됐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방청객들은 “마지막 변론이지만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또 정 변호사가 변론 도중 5·18민주화운동을 거듭 ‘광주사태’라고 표현하자 항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일부 방청객은 “왜 자꾸 광주사태라고 말하느냐”고 소리쳤다. 긴 한숨이 곳곳에서 들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전씨 측은 아랑곳하지 않고 4시간짜리 ‘마라톤’ 변론을 계속했고 오후 6시30분에야 말을 마쳤다. 정 변호사는 결심공판을 마치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재판에서 증인 신문 과정이 길었던 만큼 그 증언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재판을 방청한 차종수 5·18기념재단 고백과증언센터 팀장은 “검찰이 길어야 30분간 발언한 데 반해 정 변호사는 4시간에 걸쳐 궤변을 늘어놓았다”며 “재판부를 존중하지만 변론 기회의 형평에 어긋난 것 아닌가 싶다”고 아쉬워했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을 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자명예훼손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전씨에 대한 1심 선고는 내달 30일 오후 2시 광주지법에서 열린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