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하늘이가 사라진 자리는 고요한 바람 소리로 채워졌다. 어린아이가 살해됐고, 유기된 시신을 간신히 찾았는데, 아이의 마지막은 어쩐지 포근하고 아늑하다. 동화를 옮겨 놓은 것 같은 상상 속 공간인 두온마을에는 하늘이 같은 주민들이 산다. 시신을 찾지 못해 이승에 남은 영혼들. 음침할 거라 기대했다면 완벽히 틀렸다. 잔잔하게 귀를 간질이는 소리는 분위기를 한층 아늑하게 조성한다. 냉동고에 방치된 시신이나 아무렇게나 매장된 시신을 발견할 때는 차갑고 거친 숨소리가 화면을 감싼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공기 안에 따뜻함이 남아있다. 음악은 어쩐지 더 아름답다. 유기된 시신을 다루는데 이상하게 알록달록한, 조금 희한한 스릴러극 OCN ‘미씽: 그들이 있었다’를 만드는 박세준 음악 감독 이야기를 들어봤다.
종영이 한 주 앞으로 다가온 ‘미씽’은 실종된 망자들이 모인 영혼 마을을 배경으로 사라진 시체를 찾고 사건 배후의 진실을 좇는 미스터리 추적 판타지 극이다. 생계형 사기꾼 김욱(고수)은 어느 날 괴한에게 쫓기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두온마을로 들어왔다. 그저 며칠 빌붙었다 떠날 생각이었는데 주민 장판석(허준호)의 한마디가 귀에 꽂힌다. “여기는 죽어서 몸뚱이를 못 찾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지금까지 만났던 이들이 모두 영혼이었다니. 그제야 자신에게 영혼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유일한 인간은 장판석 뿐이었다. 김욱은 두온마을에 감춰진 진실에 다가선다. 그들이 마을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깥세상 어딘가에 있는 자신의 시체를 찾는 것뿐이다. ‘미씽’은 신선한 스토리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쌓으며 웰메이드 드라마의 저력을 뽐내는 중이다.
‘미씽’은 실종된 망자들의 영혼이 머무는 두온마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간이 사는 현실과는 다르게 표현해야 했지만 기존 장르물과 달리 휴머니즘을 담아야 해 너무 동떨어져서는 안 됐다. 여느 장르물과 전체적인 분위기부터 달라야 했다. 흉기나 시체가 매회 등장하지만 어둡거나 음산함 없이 ‘미씽’ 특유의 포근한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박 감독의 예민한 감각 덕분이다.
“음악적인 요소가 공포감에 맞춰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애를 담아야 했으니까요. 살인 현장이나 시신 발견 장면 등을 포함해 전반적인 극 분위기를 밝게 가져가려고 애썼어요. 예를 들어 골목에서 도끼를 들고 싸우는 집단 폭행 장면에는 장엄한 음악이 아닌 밝고 신나는 음악을 넣으면서 분위기 톤을 맞췄어요.”
박 감독은 특히 바람 소리에 집중했다. 특히 2회에 등장한 하늘이가 시신을 찾은 후 사라지는 장면을 꼽았다. “하늘이가 사라지고 난 뒤 몇 초 동안 음악 없이 바람 소리만 들립니다. 피아노가 천천히 올라오지만 바람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피아노와 함께 악기처럼 어우러지죠. 바람 소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성을 악기처럼 이용하고 있습니다.”
공포감을 배제하기 위한 노력은 곳곳에 묻어난다. “여고생 은지의 시신을 땅속에서 찾는 장면에서도 슬프거나 무서운 음악이 아닌 아름다운 음악을 삽입했어요. 미씽만의 독자적인 따뜻함을 담고 싶었죠.”
아늑한 두온 마을과 섬뜩한 현실의 차이는 악기로 구분했다. 이 감독은 “두온 마을은 클래식한 오케스트라 구성 음악이 주로 쓰인다”며 “현실에서는 기타음 전자악기 음이 쓰인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미씽’에 음악을 입히는 일은 박 감독에게도 도전이었다. “판타지, 호러, 미스터리, 수사물 등 여러 요소를 갖고 있는데도 그리움, 외로움, 위로, 사랑 같은 감성에 더 큰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음악은 감성을 건드리면서 장르적 분위기를 내줘야 하기 때문에 각각의 장면 모두 신중하게 접근했어요. 참 어려웠는데, 보람찼죠.”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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