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산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동화를 옮겨 놓은 것 같은 상상 속 공간이 펼쳐진다. 영혼이 사는 두온마을이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마을을 거닐다 보면 은은한 조명과 앤티크한 소품들이 가득한 카페 하와이가 등장한다. 돌연 분위기는 냉각된다. 냉동고에 방치된 시신이나 아무렇게나 매장된 시신을 발견할 때는 차갑고 거친 숨소리가 화면을 감싼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공기 안에는 따뜻함이 남아있다. 유기된 시신을 다루는데 이상하게 알록달록한, 조금 희한한 스릴러극 OCN ‘미씽: 그들이 있었다’를 만드는 이강현 미술 감독 이야기를 들어봤다.
종영이 한 주 앞으로 다가온 ‘미씽’은 실종된 망자들이 모인 영혼 마을을 배경으로 사라진 시체를 찾고 사건 배후의 진실을 좇는 미스터리 추적 판타지 극이다. 생계형 사기꾼 김욱(고수)은 어느 날 괴한에게 쫓기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두온마을로 들어왔다. 그저 며칠 빌붙었다 떠날 생각이었는데 주민 장판석(허준호)의 한마디가 귀에 꽂힌다. “여기는 죽어서 몸뚱이를 못 찾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지금까지 만났던 이들이 모두 영혼이었다니. 그제야 자신에게 영혼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유일한 인간은 장판석 뿐이다. 김욱은 두온마을에 감춰진 진실에 다가선다. 그들이 마을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깥세상 어딘가에 있는 자신의 시체를 찾는 것뿐이다. ‘미씽’은 신선한 스토리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쌓으며 웰메이드 드라마의 저력을 뽐내는 중이다.
‘미씽’은 실종된 망자들의 영혼이 머무는 두온마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간이 사는 현실과는 다르게 표현해야 했지만 기존 장르물과 달리 휴머니즘을 담아야 해 너무 동떨어져서는 안 됐다. 이 감독은 “현실 공간과 너무 드라이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채광을 고려해서 되도록 따뜻한 톤의 색상을 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두온마을 속 카페 하와이는 특히 심혈을 기울인 공간이다. “세트로 제작된 카페 하와이의 경우 의도적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살리려고 했어요. 바나 작업실이나 객실의 톤은 벨 에포크 시대의 한가로운 전원의 카페 분위기에 착안해 고전적인 스타일로 구성했고요. 소품도 시간이 느껴지되 고물의 느낌이 아닌 생활감이 있을 만한 구성을 염두에 뒀는데 특히 ‘시간의 방’을 만들 때 가장 고심했어요. 눅눅함이 느껴지는 수도원 어딘가 구석에 있는 기도실을 모티브로 만들었죠.”
어쩐지 이질감이 느껴지는 공간이 있다. 두온마을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사람인 장판석의 집이다. 그는 시체를 찾아야 이승을 떠날 수 있는 두온마을 주민의 조력자다. 장판석의 집은 몽환적인 두온마을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지로 만든 문, 철로 만든 밥상이나, 하회탈 액자, 지푸라기로 만든 여러 소품이 눈길을 잡는다.
“장판석 집의 위치와 분위기는 매우 중요해요. 현실과 비현실의 사이에 있는 공간이라 장판석이 왜 거기 살고 있는지는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줘야 했죠. 폐가를 리모델링하면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공간이라는 특징을 부여했는데요. 현실감이 어느 정도 있되 약간은 동화적인 분위기의 공간을 정감 있는 낡은 시골집으로 표현했는데, 여기에 도회적인 현실과 판타지를 섞어 두온 마을 사이에 있기 적당한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두온마을은 음산하거나 무서운 공간이 아니다. 이곳에 사는 영혼들이 죽음을 맞고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사연과 잊히는 것들에 대한 간절함이 ‘미씽’의 주된 메시지다. 때문에 여느 장르물과 분위기부터 달라야 했다. 이 감독은 공포를 부각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미술적인 시각에서 범죄물로 해석하지 않았어요. 인간애가 담긴 판타지적인 요소와 동화적인 구성에 따라 이미지가 내용을 방해하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죽은 이들이 죽기 전의 시간에 멈춰진 모습을 박제해 현실과 죽은 이들의 공간을 구분하는 것이 숙제였죠. 영혼들이 모여 살고 여러 사건 사고를 다루게 되는 공간인 카페 하와이 역시 음산함보다는 현실적이지는 않으나 시간이 켜켜이 쌓이되 현실세 계와 달리 매우 평온하고 나른한 오후의 분위기를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현실과 이어지는 장판석의 공간도 외형은 다르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내고자 전반적으로 온화한 느낌의 색상과 식물, 손때 묻은 물건들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원래 있었던 공간으로 보이게끔 하고자 했죠.”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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