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고령화, 낮은 경제 수준 등 오랫동안 옛 동독 지역의 ‘약점’으로 지목돼 온 요소들이 옛 서독 지역 대비 코로나19 피해를 현저히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3일 통일 30주년을 맞이한 독일에서 옛 서독과 동독 지역이 코로나19 확산세에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는 “옛 동독에 속했던 5개 주는 코로나19 피해를 훨씬 적게 입었다”면서 “이 현상에 대해 과학적인 연구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바이러스학자들과 경제학자, 정치인들은 분단돼 있었던 40여년 세월의 유산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을 내놨다”고 전했다.
동독에 속했던 지역은 서독보다 인구 밀도가 낮고, 여전히 농촌 지역이 많으며 산업 허브로서 개발이 덜 됐다. 이는 오랜 세월동안 경제적 약점으로 작용했지만, 전염병학적 관점에선 그렇지 않았다.
1990년에서 2019년까지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동한 인구는 220만명 가량으로 집계된다. 옛 동독 지역인 작센안할트 주에선 인구 4분의1은 일자리를 찾아 서독 지역으로 떠났다. 같은 기간 서독 지역 인구는 이민자까지 가세하며 540만명이 늘었다. 작센안할트 주 관계자는 “이 지역에서는 시내라도 붐빈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북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는 독일 전국에서 가장 낮은 코로나19 감염율을 보였다. 이 지역의 감염율은 10만명 당 75명으로, 바이에른 주의 7분의 1에 해당한다. 주도인 슈베린에선 코로나19 사망자가 아직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고령화도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최근 코로나 2차 파도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퍼지는 양상을 보이지만 동독 지역의 평균 연령은 47세로 독일 전체 인구의 평균 나이인 44.5세보다 많다.
낮은 경제 수준도 코로나19 위험을 줄인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는 독일에서 가처분 소득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큰 비용을 들여 해외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적다는 의미다.
독일 정부가 지난달 펴낸 ‘통독 이후 보고서’에 따르면 옛 동독과 서독 지역의 격차는 점차 줄고 있지만 동독 지역의 인구 1명당 국내총생산(GDP)은 서독 지역의 79%에 불과하며, 베를린을 제외하면 73%로 낮아진다.
로스토크대 병원의 전염병학자 에밀 라이싱거는 “동부 지역 사람들은 해외 여행을 덜 하고, 주요 국제공항은 뮌헨, 프랑크푸르트 등 서부의 경제 허브에 위치해 있다”면서 “여기서 알프스 지역까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올초 바이러스카 빠른 속도로 퍼졌던 이탈리아 북부 등으로 스키를 타러 가는 일도 적다”고 말했다.
바이러스가 늦게 퍼지면서 동독 지역은 바이러스에 대비할 시간도 확보할 수 있었다. 슈베린 시 관계자는 “우린 코로나19가 퍼지기 전에 봉쇄령을 내렸다”면서 “이 곳에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3월11일 바이에른의 확진자 수는 120명이었고, 그로부터 닷새 뒤 두 지역은 동시에 학교를 닫았다”고 설명했다.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의 문화 차이도 영향을 미쳤다. 브레멘대 연구원 틸 힐마르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자란 동독 지역 사람들은 서독 지역 사람들보다 덜 사교적이며 정부의 ‘간섭’도 잘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옛 서독 사람들보다 사회적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 등 방역 지침을 잘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피해를 줄임으로써 옛 동독 지역은 경제적 타격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뮌헨 소재 Ifo 경제 연구소는 “독일 전체의 올해 GDP는 6.7% 후퇴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동독 지역의 경우 5.9% 역성장에 그칠 것”이라면서 “옛 동독 지역의 산업은 서독보다 덜 발달하고, ‘지역 기반’이라는 특색을 가지고 있어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