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장관 남편의 내로남불!” 시민들 분통 넘어 허탈

입력 2020-10-05 16:33


경기도 부천에 사는 변모(84)씨는 미국에 있는 아들 내외를 1년 넘게 만나보지 못했다. 올 봄에 미국에서 만나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변씨는 정부의 해외여행 자제 권고에 따라 계속 국내에만 머물고 있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버릇까지 생긴 변씨는 그저 아들을 화상채팅으로만 만난다. 몇달 전에는 변씨의 손녀가 한국에서 결혼식을 치렀지만 아들은 참석하지 못했다. 변씨는 5일 “평소 아들이 조카와 가깝게 지내던 터라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었다”며 “일생에 한 번 뿐인 가족행사도 함께 하지 못하는 시국에 장관 남편은 고작 개인 취미를 위해 미국에 갔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정부의 해외여행 자제 권고에도 불구하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이 요트를 사러 미국에 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민들이 분통을 넘어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시민들에게는 여행 자제 협조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이를 관장하는 부처 장관의 남편은 그 권고를 보란듯이 위배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수난을 겪었던 신혼부부들도 장관 남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5월에 결혼한 전모(31)씨는 폴리네시아로 신혼여행을 계획했지만 코로나로 무기한 연기했다. 그는 “여행사에 걸어둔 여행대금이 1000만원이 넘는데 예약을 취소해야할지 고민이 깊다”고 전했다.

전씨는 특히 장관 남편의 ‘내 인생인데 출국이 무엇이 문제냐’는 식의 태도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2주 자가격리 기간을 지키면서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람이 국내에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다”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권력이나 지위를 가진 사람들만 여행을 다닐텐데 그게 외교부 장관의 남편이라니 내로남불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정부가 내린 특별여행주의보는 해외여행을 원천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감염 방지를 위해 여행을 취소하거나 연기할 것을 권고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공직자도 아닌 개인의 해외여행 선택을 두고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건을 단순히 방역 불감증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라 공정성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7월 결혼한 이모(29)씨는 지난해부터 계획한 영국 신혼여행을 모두 취소했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들끼리도 여행가지 말자며 말리는 마당인데 장관 남편이면 ‘그리스 여행을 가려다 취소했다’는 식으로 블로그에 공개해도 되냐”고 반문했다.

이씨는 정부 방침에 따라 지난 추석에도 집에만 머물렀다고 한다. 그는 “결혼식 이후 식구들 챙길 시간이 없어 마음에 걸렸는데 지금보니 정부 말만 따른 우리만 바보가 된 기분”이라며 “정부는 장관 남편의 행동이 범법 행위가 아닌데도 국민들이 왜 이토록 분노해 있는지를 되짚어봐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