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피해자가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다른 결론을 내린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다시 뒤집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1부(부장판사 황정수 최호식 이종채)는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한 1심을 깨고 “국가는 A씨에게 1억189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A씨는 유신정권 때인 1977년 김지하 시인의 시 ‘오적(五敵)’을 유포했다며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확정받았다. 그러나 A씨는 2013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A씨는 국가를 상대로 구금·가혹행위 등에 대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으나 각하됐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재판상 국가와 화해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이 판결은 2015년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를 따른 것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문건에 ‘박근혜정부 국정운영 협력 사례’로 기록된 판결이기도 하다.
하지만 헌재는 2018년 8월 보상금 지급에 피해자가 동의한 경우 재판상 화해가 성립했다고 규정한 민주화보상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피해자들이 국가에 배상 책임을 물을 길이 다시 열림에 따라 A씨도 지난해 2월 헌재 결정 취지대로 다시 판단을 구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 결정이 ‘일부 위헌’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를 ‘한정 위헌’으로 해석해야 한다는게 1심 판단의 이유였다.
일부 위헌 판단은 법률 일부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보는 것으로, 기존의 법원 판단이 어긋난 법률을 근거로 내려진 판결이라는 이유로 재심 청구가 가능하다. 반면 ‘한정 위헌’은 법률 자체가 위헌적인 게 아니라 해석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이를 이유로 과거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내려진 것과 똑같은 소송은 부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헌재 결정은 이른바 양적(量的) 일부 위헌 결정에 해당할 뿐 한정 위헌 결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각하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헌재와 엇갈렸던 1심 법원의 판단이 다시 항소심에서 뒤집힌 셈이다. 현재 하급심에서도 제각각 판단이 나오는 가운데 상고심에서의 대법원 최종 판단이 주목되고 있다.
김나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