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차량 1000만대 분량 CO₂ 내뿜는 물질 사용 방치했다

입력 2020-10-04 17:01 수정 2020-10-04 17:01

정부가 자동차나 석탄화력발전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수소염화불화탄소계열(HCFCs)’ 유통을 사실상 방치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에만 1000만대의 휘발유 자동차가 내뿜는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그나마도 이는 추정치일뿐 정부 차원의 공식 통계는 없다. 여기에다 선진국의 HCFCs 사용 금지를 규정한 국제협약 위배 가능성도 있어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4일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소비된 HCFCs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3333만t으로 추계됐다. 정부 유통량 집계를 토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환산해보니, 2018년 등록된 휘발류 차량 1063만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량(3337만t)과 엇비슷하다. 또 지난해 1기 당 평균 295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당진석탄화력발전소로 따지면 총 11기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가장 많이 쓰인 분야는 건설업이다. 지난해 사용량 가운데 42.9%가 건물 단열재로 소비됐다. 실제로는 더 많은 양이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 현장에서 단열재로 쓰이는 중국산 ‘폴리올’의 경우, HCFCs가 포함돼 있지만 정부 유통량 집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HCFCs가 국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통계조차 없는 상황에서 유통 단계 자료도 부실한 셈이다.

국제사회에서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오존파괴물질 사용을 제한하는 국제협약인 ‘몬트리올 의정서’는 HCFCs의 단계적 폐기를 결정한 상태다. 선진국은 올해까지, 개발도상국은 2030년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 한국은 의정서 가입 당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지난해 10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국제사회에 선언했다. 선언대로라면 내년부터 HCFCs를 쓸 수 없다.

양이원영 의원은 “기후위기 상황에서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HCFCs 때문에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가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조속히 관리체계를 정비하고 HCFCs의 조기퇴출을 위해 정부의 기술개발 관련 적극적 재정투자와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