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형 전자상거래(e커머스) 유통업체 배송기사를 대상으로 첫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배송 물량이 급증하면서 사업주의 노동관계법 위반 여부를 점검하려는 조치다.
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쿠팡과 SSG닷컴, 마켓컬리까지 e커머스 유통업체 3곳에 대한 근로감독을 최근 개시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주문이 급증했고, 배송기사의 노동 환경이 악화할 우려가 있어 근로감독에 나섰다”며 “e커머스 유통업체 배송기사를 근로감독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송기사의 장시간 노동, 임금체불 현황 등 노동관계법 위반 여부를 집중 조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쿠팡·SSG닷컴·마켓컬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배송 물량이 최대 40%까지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고속 배송시스템으로 우려했던 사재기 열풍은 잠재웠지만, 업계에서는 배송기사 근무환경이 기존보다 더욱 열악해졌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 3월에는 입사 4주 차인 쿠팡맨 김모씨(46)가 새벽 배송 중 과로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번 근로감독은 쿠팡맨을 비롯해 SSG닷컴·마켓컬리 배송기사 등 총 2만명 안팎이 대상으로 추산된다. 쿠팡의 경우 2014년 배송기사 50명을 고용해 로켓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올해 1만명을 돌파했다. 최근에는 당일배송에서 나아가 ‘2시간 이내 배송’ 상품까지 등장하면서 e커머스 유통업체 간 배송 속도 경쟁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정부가 처음으로 배송기사의 노동 실태를 파악하겠다고 나선 이유다.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감독 대상인 쿠팡·SSG닷컴·마켓컬리는 물품 판매부터 배송까지 직접 맡기 때문에 배송기사를 직고용하거나 일부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며 “쿠팡맨 등은 사업주와 계약 관계에 있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근로감독에는 한계점도 있다. 쿠팡맨과 달리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로 분류되는 일반 택배기사는 법적 근거가 미비해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 택배기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개별사업자 지위를 갖는다. CJ대한통운·한진·롯데글로벌로지스·로젠 등의 택배기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 관계자는 “법원에서 일반 택배기사의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을 인정한 사례가 있지만, 이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개념과 다르다”며 “일반 택배기사는 특고로 분류되기 때문에 정부가 근로감독을 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한 노동 전문 대학 교수는 “정부와 국회는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택배 노동자 권익을 보호하는 생활물류서비스발전산업법 제정에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