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 모이게 한 ‘나훈아 신드롬’
KBS 2TV는 트로트와 비대면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으면서 특집 방송 대전(大戰)에서 승기를 쥐었다. 이번 연휴의 시작을 알리고 대미까지 장식한 건 ‘가황’(歌皇) 나훈아였다. “더 이상 효도 티켓팅(자식이 부모 대신 티켓을 예매하는 일)은 없다. 우린 라이벌이다.” 연휴 시작 첫날인 지난달 30일 KBS 2TV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전파를 탄 순간부터 나훈아 관련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영상)이 시작됐다.
나훈아는 평소 베일에 싸인 스타다. 곡 작업을 할 때는 하릴없이 전 세계를 떠돌았고, 대중과 만날 때는 방송이 아닌 공연장 무대에 섰다. 온라인은 15년여 만에 나훈아가 방송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8월부터 들썩였다. 코로나19 탓에 비대면으로 전환돼 관객 1000명을 추첨했는데, 전 세계에서 신청이 폭주해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나훈아가 직접 기획한 콘서트는 기대 이상이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방송 시청률은 29.0%였다. 지상파라는 강점을 고려하더라도 케이블, 종합편성채널과의 경쟁 구도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다. 폭발적인 화제에 제작진은 뒷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3일 밤 긴급 편성했다. 이날 방송에서 제작진이 “(비대면 콘서트는) 안 한다고 할 줄 알았다”고 말하자 나훈아는 “보이지도 않는 이상한 것(바이러스) 때문에 물러설 수는 없었다”고 답했다.
나훈아 인생에서 관객 없는 콘서트는 처음이었다. “눈빛이 보이지도 않고 우짜면 좋겠노?” 나훈아는 아쉬운 마음을 내비치면서도 “준비됐죠?”라고 소리쳐 환호성을 끌어냈다. 규모는 대단했다. 웅장한 배가 무대를 뚫고 나오더니 날개를 단 댄서들이 와이어를 타고 내려왔다. 머리가 하얗게 센 70대의 가황이 민소매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무대를 질주하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신곡 ‘테스형’은 밈 콘텐츠의 중심에 섰다. “깡 신드롬은 끝났다. 이젠 ‘테스형’ 시대” 같은 유행어가 나왔고, 온라인 백과사전에는 소크라테스와 나훈아가 의형제로 기록됐다.
나훈아의 말들도 화제를 모았다. 특히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은 본 적 없다” 같은 말에 정치권도 들썩였다.
추석 연휴도 ‘트로트’ 열풍
이번 연휴에는 채널을 돌릴 때마다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트로트의 부흥을 이끈 TV조선은 지난 1일 ‘2020 트롯 어워즈’를 선보였다. ‘미스터트롯’의 주역들과 이미자, 설운도, 남진, 태진아, 송대관, 장윤정 등 트로트계 거장들이 참석했다. 특히 트로트 100년의 역사를 되짚는 시간을 마련해 전통가요의 건장함을 과시했다.
JTBC는 ‘히든싱어6’ 설운도 편을 편성했고, SBS는 ‘트롯신이 떴다2-라스트 찬스’, MBC는 정규 방송을 앞둔 ‘트로트의 민족’을 선공개했다. MBN ‘보이스트롯’과 KBS JOY ‘이십세기 힛-트쏭’도 화제였다. 트로트 예능은 이어진다. TV조선 ‘미스트롯2’와 KBS 2TV ‘전국트롯체전’, MBC ‘트로트의 민족’이 곧 첫 방송 한다.
촌스럽다고 치부됐던 트로트는 힙합, 국악, 댄스와 만나면서 신(新)장르로 자리 잡았고, 지금은 세대 화합을 이끌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을 더한 뉴트로 열풍으로 젊은 층에는 ‘힙한 음악’으로 인식됐고, 장·노년층에게는 코로나19로 침체한 사회에서 향수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안전하게’ 만든 특집들
지금까지 명절 특집 방송의 경우 스튜디오에 한복을 차려입은 스타 여러 명이 모여 앉아 화목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올 추석 키워드는 ‘거리두기’다. 스튜디오에 방청객은 없었고, 스태프도 최소 인력이 참석했다. 야외 촬영은 피했고, 불가피한 접촉 상황에서는 투명 칸막이를 설치했다.
가장 큰 변화는 명절 대표 방송 MBC ‘아이돌 스타 육상선수권 대회’다. 계주, 리듬체조, 씨름 등 오프라인 경기가 어렵게 되자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대회’로 변경하고 분리된 공간에서 온라인 경기를 치르도록 했다.
KBS 2TV와 SBS도 ‘랜선’을 내세웠다. KBS는 ‘랜선장터-보는 날이 장날’을 편성하고 온라인을 통해 지역 특산물을 홍보하면서 뜻 깊은 의미까지 잡았다. SBS는 ‘랜선 집들이 전쟁-홈스타워즈’로 각종 인테리어 노하우를 전수하고, 비대면 음악 추리 예능 ‘방콕떼창단’을 파일럿으로 편성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