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음식, 같은 시간에 비슷한 양을 먹는데, 왜 나만 살이 찔까요? 변비 때문일까요? 아님 정말 변해 버린 체질일까요?”
포털사이트 지식인코너에 흔히 올라와 있는 질문이다. 똑같은 환경에서 사는데 같이 생활하는 가족이나 친구에 비해 살이 많이 찐다면 분명 이유가 있다. 유사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 힌트는 ‘장 속 세균’에서 얻을 수 있다.
#뚱보균 ‘피르미쿠테스’를 아시나요
2일 의료계에 따르면 장에는 1g당 약 1000억 개의 세균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내 세균들은 면역체계 관리, 건강을 지키는 일까지 많은 일을 수행한다. 수많은 세균 중에는 ‘비만’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도 있다.
실제 최근 방송 ‘미운오리새끼’에 출연한 홍선영씨는 ‘장내 뚱보균’이 많아 비만하기 쉽다는 얘기를 들어 화제가 됐다.
뚱보균의 대표격으로 ‘피르미쿠테스(Firmicutes)’를 들 수 있다. 피르미쿠테스는 장내 유해균 중 하나로 몸 속 당분의 발효를 촉진시켜 지방을 과하게 생성하게 만들며, 지방산을 생성해 비만을 유도한다. 식욕 억제 호르몬 렙틴의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준다.
서울대병원이 운용하는 서울시보라매병원 소화기내과 김지원 교수는 “같은 양을 먹어도 유독 더 살이 찌는 사람은 뱃속에 이런 뚱보균이 많이 증식돼 있을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뚱보균이 증가하면 내장 지방이 쌓이고 내장 지방은 독소와 염증을 발생시킨다. 독소와 염증은 장 속 유익균을 죽게하고 뚱보균을 증가시키면서 결국 면역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실은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됐다. 미국 메이요대가 쥐를 이용해 연구한 결과 피르미쿠테스를 주입한 쥐는 똑같은 양의 먹이를 먹고도 장에 세균이 없는 쥐보다 살이 1.5배나 더 쪘다. 이 뿐 아니다. 미국 뉴욕대 연구결과 활발한 번식으로 피르미쿠테스 수가 늘어나면 당뇨병까지 유발할 확률이 높았다.
365mc클리닉 강남본점 손보드리 대표원장은 “피르미쿠테스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정제된 달콤한 ‘단순당’과 고소한 ‘지방질’이다. 이들 식품을 많이 먹을 때 수가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르미쿠테스는 당분·지방을 비롯한 영양소의 흡수를 촉진하는 작용을 하는 만큼, 수가 늘어날수록 단순당·지방 흡수가 빨라지며 살이 쉽게 찐다”며 “이같은 장내 미생물은 유전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평소 식습관에 따라 수가 늘고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프로바이오틱스만 챙겨 먹으면 된다?
피르미쿠테스가 많이 증식돼 있더라도 다행히 이는 음식섭취를 통해 조절할 수 있다. 이때 흔히 알려진 유산균, 속칭 ‘프로바이오틱스’만 챙겨 먹으면 해결될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식습관 교정 없이 프로바이오틱스만 먹을 경우 효과를 보기 힘들다.
손 원장은 “단순히 유산균만 먹는다고 해서 뚱보균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며 “아무리 좋은 유산균이라도 장내 상태가 이미 나쁠 경우 복용하는 유익균이 제대로 증식하지 못해 효과가 떨어진다”고 조언했다.
이럴 경우 뚱보균의 반대개념인 ‘박테로이데테스(Bacteroidetes)’를 늘려주는 게 도움된다. 박테로이데테스는 지방분해 효소를 활성화하고, 체내 지방연소 및 체중감소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날씬균’으로 불린다. 또 당뇨병을 일으키는 피르미쿠테스와 달리 혈당 감소 호르몬을 활성화해 체내 혈당도 떨어뜨린다.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비만인 사람의 장내 세균 비율은 박테로이데테스보다 피르미쿠테스 계통군이 약 3배 더 높다’는 미국 워싱턴대의 연구결과가 실린 바 있다.
또 국내 건강 프로그램 KBS ‘생로병사의 비밀’은 장내 미생물 가운데 우위를 점하는 미생물에 따라 체중 변화가 있음을 흰쥐 실험을 통해 밝혔다.
뚱보균인 피르미쿠테스를 투여한 흰쥐는 포도당 흡수가 비정상적으로 촉진돼 2주 만에 체중이 2배로 불었고 날씬균 박테로이데테스가 장내 미생물 중 우위를 점하게 되면 탄수화물을 장에서 분해 및 배출해 체중이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했다.
#액상과당 줄이고 식이섬유 섭취 늘려라
그렇지만 피르미쿠테스와 박테로이데테스는 공존해야 한다. 손보드리 원장은 “피르미쿠테스가 ‘뚱보균’이라고 해서 아예 이를 없애버리면 인체에 악영향이 생긴다”며 “대신 박테로이데테스 비율을 늘리는 쪽으로 장 관리에 나서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박테로이데테스를 늘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식단에서 액상과당·가공육·정제 탄수화물을 없애고 식이섬유를 늘리는 것이다. 박테로이데테스의 먹이는 바로 ‘식이섬유’다.
식이섬유가 풍성하게 들어올수록 영양분이 늘어나는 만큼 박테로이데테스가 활성화되고 증식된다. 채소, 야채, 통곡물 등이 들어간다. 유산균이 풍부한 발효음식도 추천된다. 염분을 줄인 김치, 된장, 발효유 등이 속한다.
손 원장은 “만약 똑같은 환경에서 생활하는데 같이 생활하는 가족이나 친구에 비해 살이 많이 찐다면 ‘뚱보균’이 많이 증식돼 있을 확률이 있다”며 “이럴 경우 ‘날씬균’의 비율을 높여주는 식단을 이어가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날씬균의 비율을 높이는 것은 양질의 식이섬유 위주 식단과 충분한 수면인데 이는 결국 다이어트로 이끄는 습관”이라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