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난지원금 신청 안내 문자, 추석 연휴를 앞두고 택배나 모바일 쿠폰을 안내하는 문자, 자식이나 지인을 빙자해 도움을 요청하는 문자….
정부, 금융당국, 경찰청, 보안시스템업체 등이 최근 잇달아 주의보를 내린 스미싱(문자 결제 사기) 범죄 유형들이다. 이 같은 주의보가 내려진 게 이번 추석이 처음도 아니다. 피해를 본 사실을 빨리 알아차리기 힘든 연휴 등을 앞두고 특히 기승을 부리는 스미싱이나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는 그동안 많이 알려졌다.
지난달 23일 경찰청의 스미싱 피해 당부 기사를 쓰면서 ‘아직도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머릿속 한 켠을 스쳤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링크가 있는 문자는 클릭하면 안 된다”는 메뉴얼은 이미 일종의 상식이 될 만큼 알려진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 생각은 공교롭게도 그날 저녁 퇴근 후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서 정면으로 깨졌다.
‘딸 의심 못 해서’ 걸려든 엄마
엄마의 전화는 저녁 10시가 다 돼 집으로 걸려왔다. 늦은 시간에 휴대전화가 아닌 집 전화라니 이상했다.
“엄마, 웬일로 이 시간에 집으로 했어?”
“너 전화가 안 된다며. 다른 게 아니라 아까 네가 하라고 한 것 때문에 이러는 것 같은데…”
“응? 내가 뭘 하라고 했다고?”
앞뒤 상황설명 없이 이어가는 엄마의 말은 당황스러웠다. 엄마는 마치 나랑 계속 얘기하고 있었던 사람 마냥 내 질문에 채 답하지도 않고 용건을 이어갔다.
“그 구글인가. 네가 설치하라고 한 거 있잖아. 근데 내가 지금 ○○한테 송금을 해줘야 하는데, 인터넷뱅킹을 하려니 자꾸 ‘원격’ 무슨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어서 안 된다고 그걸 지워야 한다고 메시지가 뜬다고. 네가 하라고 한 거 때문인 거 같은데, 그거 이제 지워도 되는 거야?”
구글, 뱅킹, 원격 프로그램….
세 단어에 덜컥 머리가 하얘졌다.
“엄마 잠깐만, 누가 뭘 설치하라고 했다고?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무슨 얘기에요? 오늘 우리 아침 일찍 뒤로는 통화 안 했잖아. ”
그제야 멈칫하는 엄마의 당황스러움이 전화기 너머에서 전해졌다.
“아니 네가 폰 고장 났다고 문자했잖....”냐는 엄마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 문자라니 무슨 문자? 뭘 깔았어? 아니 뭔가 이상하면 나한테 전화를 했어야지.”
“아니 폰이 고장나서 전화가 안 된다길래. 그래서 지금 집으로 한 거고....”
“그게 언젠데? 뭐뭐 알려줬어요? 아니다, 일단 빨리 전화 끊고 은행이랑 카드사랑 전화해서 신고하고 정지부터 해. 스미싱이야.”
엄마 방심시킨 표현 세 개…“엄마 뭐해? 아 ㅎㅎ 액정이 깨졌어”
그렇다. 엄마는 스미싱 사기에 걸려들었다.
은행부터 경찰까지 거래정지와 신고를 모두 마친 뒤에서야 다시 통화된 엄마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일단은 결제가 된 내역이나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데도 엄마는 넋이 나간 듯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날 점심시간을 이용해 엄마를 만나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니 왜 그리 놀랬는지 이해됐다.
엄마는 받은 문자 속 링크를 클릭해 원격프로그램을 설치한 것은 물론, 두 종류의 신용카드 앞뒷면 사진, 주민등록증 사진에 주거래은행 계좌번호와 비밀번호까지 모두 상대방에게 보냈다. 피해가 없었다는 건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밖엔 설명이 안 될 정도였다.
“네가 아닐 거라고 아예 생각도 못 했으니 의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 딸이 아닐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상대였기에 모든 정보를 내줬단 얘기다. 평소 엄마와의 대화나 공유하던 일들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 아녔다.
딸이 기자인 것도, 평소 냉철한 엄마의 성격도 ‘너무 딸 같았던’ 문자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엄마 뭐해?”라는 질문에 순순히 “오늘 우리 집에서 계하기로 해서 밥준비^^”라고 답한 엄마의 문자에서 얼마나 철석같이 상대를 나라고 믿고 있었는지가 보였다.
“니가 워낙 폰 액정을 자주 깨트리기도 했으니까…. 전혀 이상하단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
유사 사건들에서 그랬듯 ‘폰이 안돼서 문자밖에 안 된다’ ‘액정이 깨졌다’ 등의 문자가 결정적으로 엄마를 방심하게 한 요소였다. 하필 내가 여러 번 액정을 깨트렸던 것도 스미싱에 당할 빌미가 됐던 셈이다.
일단 딸의 문자로 받아들이니 그 뒤로는 속수무책이었다. 엄마는 “컴터로 등록해서 문자하고 있다”는 얘기에 발신 번호가 다른 데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다. 하필 끝자리 번호가 내 번호와 비슷하기까지 했다.
‘컴터용 문자’라는 말에…“내가 잘 몰라서”
“그래도 번호가 다른데 이상하게 생각했어야지” 나도 모르게 타박이 튀어나왔다.
“아니…. 컴터용이라 문자만 가능하다고 하니까. 그렇게 쓰는 번호가 있는 건가 했지. 내가 컴퓨터를 잘 모르니까...”
엄마는 또 민망해 했다. ‘잘 모르는 것’조차 자식들에게 면구스러운 부모님들의 마음이 악용되는구나 싶었다. 엄마는 ‘회사에서 근무 중인 애가 오죽 급하면 이렇게 문자로까지 연락할까’ 싶은 마음이 먼저였기에 ‘이상한 점’ 같은 건 사실 눈에 띄지도 않았다고 했다.
더구나 ‘전화가 고장났다’는 스미싱 범죄의 전형적인 수법도 그대로 먹혔다. 전화로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이 차단된 것이다. 실제 엄마는 그날 스미싱 범인이 심은 원격 프로그램 때문에 전화 사용에 불편이 있었는데도 내가 퇴근해 집에 도착했을 법한 밤늦은 시간까지 기다리다 집으로 전화를 거셨다.
너무 ‘순순히’ 다 해준 엄마…그들이 노리는 이유
엄마와 범인이 주고받은 문자들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엄마가 너무나 순순히 ‘그놈’ 요구대로 다 해줬다는 점이었다. 엄마로선 사기범을 ‘나’라고 생각했으니, 내 요구대로 다 해준 셈이다.
인증받는 데 필요하다는 애플리케이션도 링크를 클릭해 설치한 뒤 다시 그 아이디를 복사해서 보내줘야 했는데, 무언가 오류가 났던지 같은 작업을 두 번 더 반복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엄마는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면서도 끝까지 다 ‘수행’했다. 신분증과 신용카드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애플리케이션을 깐 뒤로 범인은 한참 동안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말 것을 누차 당부했다. 엄마는 몇 번이나 “이제 된 거냐, 끝났냐”고 물으면서도 기다렸고, 오전 11시38분부터 시작된 스미싱 사기범과의 문자는 오후 6시에야 최종 끝났다.
어떻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를 계속 들어주고 있었냐는 질문에 엄마의 답은 왜 그들이 ‘자식’을 빙자하는지를 설명하는 답 같았다.
“니가 도와달라고 한 거니까 잘 해주고 싶었지. 짜증은 났는데 전화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잖아”
천만다행으로 금전적 피해는 피한 엄마는 같은 이유로, 너무나 부끄럽지만, 이 일을 기사화하길 원했다. “자식 가진 부모는 머리로 알아도 또 당할 수 있으니” 실제로 어떤 문자들이 오갔는지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스미싱을 조심하라’는 기사를 쓰고 있던 그 시간에 엄마는 스미싱 사기범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었다. 내가 쓴 기사 링크, 아니 그 숱한 ‘스미싱 예방’ 기사 제목 한 줄이라도 보내드리거나 조심하시라는 전화 한통했으면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 딸은 전화가 고장 나도 다른 번호로 문자는 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하루 종일 문자로 힘들게 하진 않을 꺼라고. 어떤 이유로든 프로그램을 설치하라는 링크를 받으면 열어선 안 되고 필요하면 어떤 식이든 통화하도록 하고, 무엇보다 자식이라도 개인·금융정보를 섣불리 보내선 안 된다고 말이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