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쓰레기더미에 누워봤다…코로나 ‘쓰레기 클라쓰’

입력 2020-10-03 07:24 수정 2020-10-03 07:24

“우리는 10일 동안 쓰레기를 얼마나 남길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많은 것이 변했다.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익숙해졌고 친구와의 만남은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무기한 미뤄졌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됐고, 각종 모임과 행사들도 줄줄이 취소됐다.

활동이 줄어들면 인간이 만들어내는 오염과 쓰레기는 줄어들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돌아보니 상황은 반대인 듯싶었다. 집 앞 마트보다 온라인 쇼핑몰을 자주 방문했고, 식사도 외식보다는 배달로 채워졌다.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떠는 대신 테이크아웃 컵에 담아 걸으며 마셨고, 케이크 한 조각도 상자 포장 후 비닐봉투에 담아 들고 왔다.

어느덧 쓰레기통에는 택배 상자와 배달 음식 용기, 온갖 비닐봉지가 쌓여갔다. 활동반경은 좁아졌는데 쓰레기는 어느 때보다 더 왕성하고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었다.

국민일보 최민석 기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본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미국의 사진작가 그레그 시걸(Gregg Segal)이 한 가족의 일주일치 쓰레기를 한데 모아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의 제목은 ‘7 Days of Garbage(7일간의 쓰레기)’. 한 가족의 평범한 일주일이 남긴 쓰레기의 양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전 세계를 돌면서 사람들의 쓰레기를 기록하고 있었다. 물론 코로나 전, 먼 나라 미국의 이야기다.

7 Days of Garbage (by Gregg Segal)

그렇다면 코로나 한복판을 통과하는 우리는 어떨까? 배달과 포장, 테이크아웃을 반복하며 코로나 쓰레기의 늪에 빠진 우리는 매일 어떤 쓰레기를 얼마나 만들어내고 있을까?

20대 인턴기자 두 명이 10일 동안 자신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모아 기록해 보기로 했다. 코로나 시대를 보여주는 일종의 ‘쓰레기 로그’인 셈이다.

10일간 쓰레기 여정을 동행한 가방.

9월 5일부터 10일간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생긴 쓰레기를 전부 모았다. 매일 밤 그날 하루 동안 생긴 쓰레기를 한데 모아 사진을 찍었다. 회사에서 만든 쓰레기도 모두 챙겨야 했기에 ‘쓰레기 가방’을 들고 출근했다.

쓰레기 로그에 참여한 인턴 기자 중 한 명은 가족과 함께 사는 4인 가구다. 1일 1커피는 필수. 다만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생필품 쓰레기는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인턴 1명은 자취 4년 차 1인 가구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근처 식당에서 ‘혼밥’을 하고 마트에서 직접 장을 보는 걸 즐겼지만 지금은 모든 걸 배달로 해결한다. 일상이 극적으로 바뀐 경우다. 쓰레기도 그만큼이나 드라마틱하게 늘었다.

배달의 덫 : 커피 러버의 기록
인턴 A가 10일간 모은 쓰레기.

만실이 된 택배보관함, 옷 봉투에 붙어있던 안내멘트

1일 차-커피 배달은 오버였어

택배가 3개 왔다. 전부 의류였다. 두꺼운 비닐봉투 안에 얇은 비닐 하나 더, 이렇게 두 겹으로 포장돼 있었다. 속봉투 위에 붙은 스티커가 눈에 띄었다. ‘의상 보호를 위해 불가피하게 플라스틱 봉투를 사용하였습니다(…)재사용하거나 재활용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옷을 꺼내려면 비닐을 찢어야 했다. 대체 어떻게 재활용하라는 건지, 실소가 나왔다.

배달 중 쏟아짐을 방지하기 위해 커피에 붙어있던 종이랩

돈가스와 커피를 배달시켰다. ‘쓰레기 갑이 돈가스’라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맞는 말이다. 돈가스 1인분을 포장했을 뿐인데 가짓수로 10개 넘는 쓰레기가 나왔다. 돈가스 소스 봉투는 씻기도 힘들었다. 샐러드 소스도 마찬가지였다. 다 처리하고 나니 진이 빠졌다. 배달커피에는 종이랩이 따라왔다. 커피가 쏟아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커피컵과 뚜껑 사이를 봉합하는 용도인 듯했다. 커피가 잔뜩 묻은 종이랩. 쓰레기 처리할 생각에 커피 맛이 떨어졌다. 커피 배달은 오버였어, 후회가 밀려왔다.

2일 차-쫄면, 먹을 땐 좋았는데


점심으로 김밥과 쫄면을 포장해왔다. 음식 포장 그릇에 단무지 그릇, 수저까지 일회용품 쓰레기가 한 무더기 생겼다. 역시 음식 포장은 쓰레기 생산 공장이었다. 부피도 컸고 뒤처리도 복잡했다. 쫄면 양념이 묻은 플라스틱 통과 참기름 범벅의 김밥 포일을 들고 씨름해야 했다. 후식으로는 추석 선물로 들어온 곶감을 꺼내 먹었다. 명절선물이라 그런지 곶감은 플라스틱으로 개별 포장돼 있다. 하나 먹을 때마다 용기 하나 뚜껑 하나, 2개씩 쓰레기가 나왔다. 점심 한끼에 쓰레기가 대체 얼마나 나온 건지 셀 수도 없다.

설상가상 이날은 마스크를 2개나 버렸다. 옷 주머니에서 잊고 있던 마스크가 튀어나온 탓이다.

3~7일 차-비닐지옥

아침부터 비가 왔다. 회사 로비에 들어서니 우산에 씌울 비닐 커버가 비치돼 있었다. 앞사람을 따라 우산을 비닐에 담았다. 12층짜리 건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비닐을 뽑아 갔을까.


구내식당에서도 매일 비닐 쓰레기가 나온다. 비닐장갑을 끼고 배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4·15 총선 때도 양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투표했던 게 떠올랐다. 오늘은 후식으로 나온 요쿠르트가 쓰레기를 보탰다. 밥을 먹고 나서는 일회용 컵을 사용해 물을 마셨다. 역시 코로나 방역을 위한 조치다. 코로나 때문에 일회용품 잔치가 벌어진 기분이다.

동료들과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공원을 걸었다. 근무시간 중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시간. 하지만 텀블러가 없으니 휴식을 위해 먹는 커피는 고스란히 매일의 쓰레기가 됐다.

야쿠르트와 비닐장갑의 공통점은 '쓰레기', 코로나 방역으로 벌어진 '비닐 파티'

비닐봉투도 거의 매일 나왔다. 저녁엔 편의점에 들러 과자 몇 개와 위생용품을 샀다. 점원이 “한 손에 들기 힘들겠다”며 비닐봉투를 건넸다. 뭔가를 사면 까만 비닐봉투는 옵션처럼 따라왔다. 가히 비닐 지옥이다.

집에 있는 두통약 마지막 2알을 먹었더니 약통과 설명서가 딸려온다. 알약이 담긴 윗부분은 플라스틱이고 아랫부분은 은박지라 둘을 분리해야 했다. 두통약을 먹었는데 두통이 몰려온다.

8~10일 차-족발이 세운 신기록
포장 족발. 국 3개는 빼고 찍었는데도 플라스틱 양이 많다.

어쩌자고 족발이 먹고 싶었을까. 포장해온 족발 세트는 족발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더 많았다. 족발, 막국수, 새우젓, 마늘, 콩나물국까지 모든 게 플라스틱 용기 안에 담겨 있었다. 친절도 해라. 밀폐된 비닐을 쉽게 뜯을 수 있게 플라스틱 칼도 있다. 다 먹고 나서 세어보니 비닐봉투, 콜라캔까지 17개의 쓰레기가 나왔다.

집에 재발급한 체크카드가 왔다. 우편물을 뜯어보니 두툼한 종이에 카드 약관이 찍혀 있다. 흰색 비닐창을 따로 분리한 뒤 두툼한 종이 약관과 봉투는 쓰레기 집하장으로 직행했다. 서점에서 책을 사고 전자영수증을 받았다. 책을 담을 비닐봉투는 30원에 샀다. 비닐은 분해되는 데 500년이 걸린다는데 30원이라니.

배달 스파게티. 배달 최소금액에 맞추려고 양추가를 했다가 다 못먹고 남겼다.

저녁 메뉴로 스파게티를 배달시켰다. 먹고 싶은 메뉴가 7700원인데 배달 최소금액은 8000원이라 음식량을 추가해야 했다. 양이 많아 다 못 먹어서 남겼다. 그릇을 닦을 때는 뚜껑에 치즈가 눌어붙어서 수세미로 떼려니 번거로웠다. 초콜릿을 찍어 먹는 막대과자를 먹었는데 거기서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다.

쓰레기와 산 지 10일, 이젠 쓰레기 감별사가 된 기분이다.

쓰레기 발자국 : 자취생의 기록

인턴 B가 10일간 모은 쓰레기.

1~3일 차- 배달의 함정

점심으로 육회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식사에 반찬과 국이 따라왔다. 국을 챙겨 먹는 편이 아니라 국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국은 그대로 버려졌고 플라스틱 용기는 괜히 쓰레기만 됐다. 반찬으로 온 김치도 반 이상 남았다.

자주 가던 동네 식당에서 사케동을 시켜 먹었다. 코로나 탓에 집앞 식당도 요즘엔 배달시켜 먹는다. 식감을 지키기 위해서 밥과 밥 위에 얹을 재료가 따로 포장되어 왔다. 덮밥은 한 그릇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배달음식일 땐 그렇지 않았다. 음식은 커다란 비닐봉투에 담겨 왔는데 입구가 너무 꽁꽁 묶여 있었다. 비닐은 재활용할 생각이었는데 결국 찢어버렸다.

한 끼를 배달음식으로 시켜 먹고 나온 쓰레기.

오후엔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한 책과 친구가 선물이라며 보낸 디퓨저였다. 책은 에어캡이 부착된 비닐봉투에, 디퓨저는 종이 박스에 담겨 왔다. 봉투와 박스, 그 위에 붙은 운송장과 테이프까지 고스란히 쓰레기가 됐다. 로션이 떨어져서 로드숍에서 새로 샀다. 할인하는 제품을 골랐더니 로션과 작은 증정품 하나가 플라스틱 박스 안에 들어 있었다. 박스는 본품 로션이 두 개는 들어갈 크기였다. 배달이 아니라고 쓰레기가 적은 것만도 아니었다.

4~5일 차- 나, 음식을 산거니? 포장을 산거니?


카페에서 바닐라라떼를 한 잔 테이크아웃했다. 플라스틱 컵에 홀더와 빨대가 묶음 상품처럼 따라왔다. 컵 뚜껑은 빨대가 없으면 사실상 음료를 마실 수 없는 돔 형태였으니 안 쓸 수도 없었다.

회사에서 작은 떡 세트를 받았다. 먹을 땐 맛있었는데 먹고 나니 쓰레기가 눈에 들어왔다. 종이 박스, 겉면 종이 포장에 비닐 포장까지 쓰레기가 잔뜩 생겼다. 내 위장에 들어간 것보다 쓰레기가 더 많아 보였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사먹은 개별 포장 빵까지 오늘은 간식 쓰레기가 한무더기다. 음료병은 비닐이나 뚜껑을 다 분리해야 해서 버리기도 수고로웠다.


쓰레기를 챙겨두기 시작한 뒤 뭘 해도 쓰레기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실 때, 아이스크림을 살 때, 과자 한 박스를 사먹을 때도 쓰레기 걱정부터 했다. 무슨 개별 포장은 이리도 성실하게 했는지.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쓰레기를 사는 기분이었다. 탄소 발자국이라고 했나? 내 걸음마다 쓰레기 발자국이 찍히고 있었다.

6일 차-안 사면 쓰레기도 없다?

아무 것도 사지 않으면 쓰레기도 없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쓰레기 로그 며칠 만에 부피가 가장 큰 쓰레기를 찾아냈다. 매일 손을 씻은 후 사용하는 페이퍼타월이었다.

저녁에 ‘쓰레기 가방’을 열었다가 페이퍼타월이 다섯 장이나 나와 깜짝 놀랐다. 물기만 닦았다가 바짝 마른 페이퍼타월은 구겨진 것 말고는 새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한데 뭉쳐 놓으니 너무 아까웠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등장 빈도수 1위 쓰레기였다. 식사 중 쓰는 2~3장의 냅킨도 빼놓을 수 없다. 하루 세 끼 대체 이렇게나 많은 휴지를 쓰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화장실에서 쓰는 두루마리 휴지는 말할 것도 없다.

쓰레기 로그를 써보니 항상 등장하는 것들이 눈에 보였다. 페이퍼타월, 알코올스왑, 화장솜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어서 이전까지는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알코올스왑은 코로나19 확산 이후부터 쓰기 시작했다. 외출했다가 들어오면 휴대전화나 지갑을 박박 닦았다. 그게 매일 쓰레기통에 쌓이고 있었다.

10일간 모았던 두 사람의 쓰레기. 박스에 보관할 때보다 펼쳐놓으니 훨씬 더 많아보인다. 국민일보 최민석 기자

7일 차-모두의 비닐지옥

퇴근하는 길에 약국에 들러 마스크를 다섯 개 샀다. 무겁지도 않고 집도 코앞이라 손에 들고 가려고 했는데 약사가 검은색 비닐봉투에 마스크를 담아서 건네줬다. 그래서 이날은 마스크, 마스크 포장지에 더해 검은 비닐봉투까지 생겼다. 원치 않는 비닐은 마트에서도 생겼다. 다른 생필품과 함께 아이스크림 세 개를 샀더니 점원이 계산을 하며 아이스크림만 따로 투명 비닐봉투에 담았다.

저녁은 근처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했다. 배달과 다른 건 배달료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플라스틱 그릇과 뚜껑, 비닐봉투, 랩, 일회용 수저, 포장지 등 비닐 쓰레기가 잔뜩 생겼다. 반찬과 국을 빼달라는 말을 잊어 음식 쓰레기까지 잔뜩 나왔다.

9~10일 차-자취생 필수템 물티슈는 어쩌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한 200㎖짜리 잼이 에어캡에 몇 겹으로 감겨서 왔다. 한뼘이 채 안 되는 작은 잼 한 통에 박스, 에어캡, 테이프까지 너무 과해보였다.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밥을 먹고 습관처럼 물티슈로 테이블을 닦았다. 집안일이 싫은 자취생이라 집에 물걸레청소포나 물티슈를 항상 구비해 놓는데 이제 보니 다 쓰레기였다. 다 쓰고 나면 포장재도 버리므로 사실상 상품 전체가 쓰레기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걸레나 행주를 빨고 말리는 일을 줄이고 싶었던 것인데, 편리함의 대가는 쓰레기였다.

내가 만든 '쓰레기 섬'에 누워보니
국민일보 최민석 기자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쓰레기 모으기를 시작한 초반, 우리는 이렇게 느꼈다. 1인 가구는 1인 가구대로 혼자 살아서, 4인 가구 구성원은 그 나름으로 생필품 쓰레기가 없어서 쓰레기 양이 적은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라는 건 사진을 찍으면서 깨달았다. 10일간의 쓰레기를 돗자리 위 평면 공간에 쏟아놓으니 그제야 엄청난 양이 실감됐다. 우리의 일상이 쓰레기더미 위에 지어 올려진 것 같았다. 고백하자면 무의식적으로 버렸거나 오물이 묻어 차마 챙겨두지 못한 쓰레기도 있었다. 그걸 감안하면 실제로 내가 만든 쓰레기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이렇게라도 일상을 유지해야지 자위하면서 참 거침없이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쓰레기들을 헤치고 그 위에 누우니 쓰레기 섬에 갇혀 사는 인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류가 지금 사는 방식을 바꾸지 않고 쭉 산다면 언젠간 그런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송다영 인턴기자
박수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