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태아 생명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간의 충돌로 마치 태아와 여성 간의 갈등인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여기엔 여성 못지않은 남성의 역할과 책임이 지대함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남녀관계는 남성의 리드로 이루어지며 더욱이 성관계는 남성의 요구에 여성이 순응함으로 맺어진다. 임신의 책임에 있어 남성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태아는 난자 하나로만 결코 만들어질 수 없으며 누군가 질 속으로 정액을 배설했기에 가능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태아와 신생아 어디에서든 채취한 세포에는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가 정확히 반반씩 들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임신과 출산의 수고를 여성이 감당하기에 피임과 양육의 책임은 남성이 담당하는 것이 옳다. 그러기에 모든 남성은 여성과의 잠자리를 꿈꾼다면, 그로 인해 파생될 다양한 가능성을 꼭 염두에 둬야 한다. 이를 대비한 철저한 준비와 동시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남성의 자기 결정권도 예외 없이 충분한 정보에 기초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이후 모든 결과에 대해 자기 결정에 대한 책임도 분명히 져야 할 것이다.
성관계도 남녀 쌍방의 자기 결정에 의해 이뤄져야 하며 임신 역시 남녀의 자유 의지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결정이기에 함께 책임져야 한다. 왜 여성만이 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나. 독일은 정자를 주입한 남성의 유전자검사를 해서라도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생부의 양육 책임을 물게 한다. 만일 양육을 포기하고 설령 낙태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낙태죄의 형벌을 여성 이상으로 남성에게 지우는 것이 정의의 법칙이라고 믿는다.
세상의 순리는 반드시 값을 치르는 것이다. 쾌락을 누렸으면 그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있어야 한다. 준비되지 못한 성관계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돌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쾌락의 반을 넘어 누린 남성의 책임은 여성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가장 불공정한 사실은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태아가 이 모든 부모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연말까지 낙태법 개정이 이뤄질 텐데 반드시 남성의 임신 출산 양육의 책임을 명시해야 한다. 이를 다하지 못한 경우 처벌하는 조항을 분명히 함으로써 더 임신 지속과 낙태가 여성과 태아의 갈등 구조가 아니라 부성과 모성, 아기의 삼자 관계 속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가족공동체적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