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익법인에서 일하는 A씨는 최근 소속 법인에 기부를 많이 했다는 이유로 일터를 떠나야 할 황당한 처지에 놓였다. A씨는 법인에서 받은 월급 중 일부를 떼어 10년 넘게 소액 기부를 해왔다. 법인의 사업 취지에 공감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A씨의 누적 기부금액이 2000만원을 넘어서자 문제가 생겼다. 기부 관련 세법에서 공익법인에 다니는 직원이 소속 법인에 2000만원 이상을 기부하면 법인이 해당 직원 급여의 100%를 가산세로 납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산세는 일종의 벌금성 세금이다. A씨가 법인을 떠나지 않으면 법인은 계속 벌금을 내야 한다. A씨는 30일 “재단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기부를 했는데 이제는 짐만 되는 것 같아 떠나야할 것 같다”고 속상해했다.
공익법인에 적용되는 일부 세법 규정이 ‘기부금의 부정한 사용을 막겠다’는 본래 입법 취지와는 다르게 현장에서 적용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회계 전문가를 따로 고용할 여력이 없는 공익법인들은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법인을 운영해오다 뒤늦게 이 문제를 인지하게 됐다. 결국 소액 기부를 꾸준히 해온 직원을 서류상 퇴사로 처리하거나 재단 관련된 다른 업체에 취직시켜주는 등의 구제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문제가 되는 법조항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3조(공익법인등 출연재산에 대한 출연방법등)와 제48조(공익법인등이 출연받은 재산에 대한 과세가액 불산입등)다. 규정은 출연자(기부자)를 ‘해당 공익법인의 총출연재산가액의 100분의 1에 상당하는 금액이거나 2000만원 중 적은 금액을 출연한 자’로 정의한다.
만약 이 출연자 또는 출연자의 특수관계인이 법인에서 일하면 법인으로부터 받는 급여만큼 가산세가 부과된다. 쉽게 말해 자산 20억원 공익법인이든 2000억원 공익법인이든 일단 법인 소속 직원이 2000만원 이상을 기부하면 기부한 직원의 급여를 전부 벌금성 세금으로 내야한다는 뜻이다.
이 규정은 임직원이 출연자로서 법인에 기부하고 다시 그 돈으로 급여를 받으면 기부금이 목적사업에 제대로 사용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졌다. 또 출연자의 기부금이 커질수록 공익법인 내에 사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2000만원이라는 기부 상한액을 제시한 것이다.
또 다른 공익법인에서 일하다 이직 직후에 3000만원을 기부한 B씨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조금만 빨리 기부했다면 정든 법인에 가산세를 물리게 할 뻔했기 때문이다. B씨는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급여 통장 내역과 법인 재직 여부를 증명하라는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가산세 부과 규정이 법인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임원진에게는 오히려 관대하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8조에는 ‘공익법인의 현재 출연자 또는 특수관계인이 전체 이사 수의 5분의 1을 초과하면 가산세를 부과한다’고 돼 있다. 예를 들어 전체 이사 5명 중 1명까지는 출연자와 특수관계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더라도 급여를 수령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인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일반 직원은 기부금액이 2000만원만 넘어가면 바로 가산세가 붙는 것이다.
법인이 지불한 가산세가 누적 1000만원이 넘어가면 해당 공익법인은 지정기부금단체 자격이 취소될 수도 있다. 이러면 세제 혜택 등 각종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이제 기부금 상한 기준을 상향시킬 때가 됐다고 조언한다. 누적 기부금액 2000만원이라는 기준은 20년 전에 세운 기준인데, 그동안의 물가 상승 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덕산 한국공익법인협회 회계사는 “규모가 작은 공익법인도 기업재단들과 동일한 관점에서 법이 적용되고 있다”며 “선의의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체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