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토카르추크 “버려졌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것 간직했다가 소설로 엮어”

입력 2020-09-28 17:11 수정 2020-09-29 07:54
올가 토카르추크 ⒸKarpati&Zarewicz/ZAIKS

“오늘날 우리는 윈도우의 창을 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고합니다. 머릿속에서 다양한 사안들이 한꺼번에 창문을 여닫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 창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애쓰지 않습니다. 실제로 관계의 연결고리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우리의 정신은 흩어져 있는 개별적 사안들을 얼마든지 연결할 수 있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별자리 소설’을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지난해 2018·2019년 수상자가 동시 발표된 노벨문학상에서 2018년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방랑자들’은 여행, 떠남과 관련된 100여편의 에피소드를 기록한 짧은 글들의 모음집이다. 여러 이야기를 엮어 거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이 소설에 대해 저자는 ‘별자리 소설’이라 이름 붙였다.

지난해 토카르추크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그의 책을 번역·출간한 민음사가 공동 이메일 인터뷰를 추진했으나 답변이 늦어져 올해 노벨상 발표 시즌을 앞두고서야 도착했다. 답변이 늦어지면서 최근 국내에 출간된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낮의 집 밤의 집’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담겼다. 이번에 국내에 출간된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비롯해 ‘태고의 시간들’ ‘방랑자들’을 번역한 최성은 한국외대 폴란드어과 교수가 인터뷰도 번역했다.

토카르추크는 자신만의 형식을 고민한 결과물이 ‘방랑자들’이라고 밝혔다. 그는 “저는 처음부터 저만의 고유한 형식을 찾아 헤맸다”라며 “이게 과연 소설이냐, 제대로 읽힐 수 있는 텍스트냐를 놓고 편집자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문학이 새로운 환경에 맞춰가며 끊임없이 변화와 변형을 거듭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며 “요즘 시대에 백 년 전 사람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자신을 포함해 폴란드에서 5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것에 대해선 폴란드의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했다. 토카르추크는 “폴란드의 문화는 항상 ‘경계의 문화’였다”며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모든 종류의 영향에 늘 개방적이었다”고 말했다. “폴란드 문학은 차별화된 독보적인 잠재력을 갖게 되었고, 여느 서구 문학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회 계층이 등장하는 고유한 문학이 만들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심리치료사로도 일했던 토카르추크는 “문학과 심리학을 의미상 서로 다른 것으로 보는 관점은 오류”라고 본다. 그는 “두 영역 모두 이야기와 해석에 기반하고 있고, 두 영역 모두 치유의 역할을 수행한다”며 “심리학은 직접적으로, 문학은 행간을 통해 수행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선 미국 소설가 필립 K. 딕의 말을 인용했다. 토카르추크는 “그는 ‘작가는 까치와 같다’라고 했다. 까치는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그 속에서 장신구나 사탕 포장지 등 온갖 반짝이는 것들을 찾아내어 자신의 둥지로 물고 온다”며 “저는 버려졌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것,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을 발굴해서 오랫동안 간직한다. 그리고 적절한 순간이 왔을 때, 그것들을 소설로 엮어 낸다”고 답했다.
Ⓒ Karpati&Zarewicz/ZAIKS

최근 연달아 한국에 출간된 작품들에 대해선 “이미 제가 쓴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신 독자분들이라면 두 권의 책에서 뭔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중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추리소설로 자연 파괴와 동물 사냥을 일삼는 인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2017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영화 ‘흔적’의 원작이기도 하다. 토카르추크는 “더 이상 동물을 물건이나 몸뚱이, 혹은 신경계를 가진 기계적인 대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며 “동물의 권한을 헌법에 명시할 때가 왔다고 저는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여성과 동물의 권익, 인류의 미래나 세상의 평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6년 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한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한 적이 있는 토카르추크는 한국과 폴란드가 “사람들의 기질, 강대국에 둘러싸인 수난의 역사, 일을 대하는 자세 등”에서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다고 설명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