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독감 걸려 숨진 회사원… “업무상 재해 인정”

입력 2020-09-28 11:16

해외 공장에서 일하다 인플루엔자(독감)에 걸려 증세가 악화된 끝에 사망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유환우)는 사망한 근로자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11월 B사에 입사해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의 인형제조 공장에서 자재관리자로 근무하게 됐다. 그런데 2017년 12월 7일 인플루엔자 증상이 나타났고, 이듬해 1월 귀국해 입원 치료를 받다가 2월 숨졌다. 사망원인은 급성호흡곤란증후군에 따른 폐렴과 저산소증이었다.

유족 측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A씨의 단기 과로가 확인되지 않고, 업무환경이 인플루엔자 또는 폐렴을 유발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불복한 유족 측은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업무환경과 무관한 재해’라는 공단 측 주장을 일축했다. 재판부는 “A씨가 공장부지 내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공장이 시내와 멀리 떨어져 회사차량 없이 외출할 수 없었다”며 “업무 관련 부분과 사적인 생활에 속하는 요인을 분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고 밝혔다.

A씨는 2017년 11월 26일 프놈펜 시내로 한 차례 외출한 사실은 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인플루엔자의 잠복기는 평균 2~4일이고 길어야 일주일 이내”라며 “증상이 최초 발현된 것은 2017년 12월 7일이므로 잠복기를 고려하면 공장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아울러 “A씨가 근무한 공장의 밀집도가 높아 현지인 근로자들과 불가피하게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캄보디아 현지에서 초기 진단과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다”는 유족 측 주장도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A씨는 처음 증상이 나타난 후에도 해열진통제 등을 복용했을 뿐, 약 1개월 동안 병원 진료를 받지 못 했다”며 “귀국해서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는 사정이 A씨 질병 악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