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럿 임명되면… 낙태권·오바마케어·이민정책 뒤집어질까

입력 2020-09-27 16:03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자로 유력시되는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등법원 판사가 지난 2018년 5월 19일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의 노터데임 대학 로스쿨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으로 보수적 색채가 강한 에이미 코니 배럿(48) 제7연방고법 판사를 지명하면서 낙태권과 ‘오바마케어’, 이민정책 등이 후퇴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배럿이 대법관 후보로 지명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배럿은 오바마케어를 승인한 미 대법원의 결정에 반기를 든 전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일명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정책으로, 전 국민 의료보험 가입 의무화를 골자로 한다. 미국은 민간 의료보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 저소득층이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기 힘들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와 관련해 배럿은 2012년 당시 오바마케어를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판결을 비판하며 정책에 대한 반대 의사를 드러낸 과거가 있다.

이날 CNN방송에 따르면 민주당은 배럿이 대법관에 임명될 경우 오바마케어의 폐지가 사실상 확실시 된다고 관측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지난 수년간 오바마케어를 없애려 해왔지만 대법원은 두 번이나 합헌 결정을 내렸다”면서 “글로벌 팬데믹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또다시 미 대법원에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미국인에 대한 의료 보호를 끝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나선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도 민주당 지원 사격에 나섰다. 그는 배럿의 임명과 관련해 “공화당은 11월 대선 전에 어떻게든 배럿을 대법관으로 임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면서 “이같은 정치적 힘자랑의 결과로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고통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오는 11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폐지를 공약한 오바마케어에 대한 위헌소송 심리가 진행되는 만큼 배럿의 인준이 속도감 있게 이뤄진다면 오바마케어의 존속 여부는 매우 불투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배럿이 대법관으로 임명될 경우 미국 내 낙태권 허용과 이민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확고한 보수주의자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배럿은 그간 수정헌법 2조의 총기 소지 권리와 이민, 낙태에 대한 보수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지난 6월에는 신규 영주권 신청자들에 대한 불이익이 담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킨 판결과 관련해 반대 의견을 냈다. 새 규칙에 불이익을 받을 이민자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배럿이 전국적인 낙태 합법화를 가져온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對)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을 뒤집는 데 앞장설지도 관심이 쏠린다. 배럿은 2018년 법원이 낙태 후 태아를 화장하거나 묻도록 한 인디애나주 낙태 규정 논란에 대한 재고를 거부하자 보수파 동료들과 함께 “낙태는 아이들의 성과 인종 등 속성을 선택하도록 설계된 제도”라며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다만 배럿 지명자는 자신에 대한 반대 분위기를 의식한 듯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긴즈버그 대법관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백악관에서 지명 소감을 말하며 “내 전임자에 유념하겠다”며 “긴즈버그는 유리천장을 부순 정도가 아니라 박살내버린 사람”이고 “그녀의 공직 생활은 모두의 모범”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